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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신입생! 왔어? [2024년 신입생 모집 영상 제작 후기]

전병준 운동원 35대 학원연합위원장 올해도 수능 시험이 끝나고 곧 있을 20살의 시기를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는 고3 친구들의 소식이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수능 시험이 있던 날, 학원연합에서는 새내기를 맞을 준비를 시작하며 ‘새내기 홍보영상’을 전국 SFC 유튜브 채널과 35대 학원연합 인스타그램에 게시했습니다. 신입생 홍보영상은 ‘새내기 이어주기 운동’의 일환으로 그 시작은 전국SFC 유튜브 채널 기준으로 33대 학원연합에서부터 영상물을 이용해 홍보물을 만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요즘엔 영상 언어가 우리 일상에 많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제 막 대학에 문을 두드리는 예비 20살에게 영상을 이용하여 S.F.C.를 소개하는 것 또한 직관적이면서도 쉽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35..

서울대 SFC의 반동성애 활동 [교회건설 13호, 1996년]

우병훈 운동원(서울대 94) 1. 동성애 운동의 전개 95년 늦가을(11월), 서울대 중앙도서관 옆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보를 보고 있었다. 자보가 인기가 있는 때는 가끔씩 있었던 일이지만, 그 자보만큼 인기가 있었던 것은 필자의 기억으로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그 자보는 ‘마음 001’- 여기서 001은 한국 사회의 인권의 정도를 나타내는 수라고 한다 - 이라는 동성애자 모임에서 붙인 것으로, 동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 당한 피해들을 적어놓고서는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을 버리고, 동성애자들의 인권 보호를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자보 옆에 붙인 의견란에는 동성애에 대한 뜨거운 찬반 논쟁이 시작되었고, 그 자보 내용은 많은 서울대인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의견란에 ..

학사(學舍)공동체 운영의 실제 [교회건설 6호, 1991년]

유영업 간사 I. 서 론 최근에 전국 여러 곳에서 학사가 생겨나고 있다. 학원 SFC 전략상 학사공동체 운동은 참으로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개개인의 삶의 변화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성경공부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고 다양하고도 인격적인 관계 가운데서 가능한 법이다. 이러한 삶의 변화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전략 중의 하나가 바로 학사공동체운동 이다. 이 학사 공동체에 있어서 그 운영의 실제를 살펴 이제 시작되는 SFC 학사 공동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II. 본 론 1. 학사 공동체란? 두 사람 이상의 그리스도인이 함께 먹고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며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곳으로 일반적으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학사는 단순한 자취방과 구별되어야 ..

나는 왜 SFC 운동원인가? [모닥불, 2007]

※ 모닥불은 2007년에 창간되었던 서울U-SFC 소식지입니다.박미연 (덕성여대)일주일 전,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며 방학 동안 아껴두었던 수다를 실컷 떨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원고 청탁을 의뢰하는 전화였다. 통화를 마치자 친구들은 도대체 누가 전화한 것인지 몹시 궁금해하고 있었다.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처음 목격한 친구들로선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난 그 대답마저도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청탁받은 글의 주제 - '나는 왜 SFC 운동원인가?' - 를 떠올리자 막막함과 부담감이 내 마음속을 가득 채워버렸기 때문이다. '왜'라는 의문사 뒤에 SFC가 있다는 것 자체가 낯선 조합으로 여겨질 정도로 지금의 나에겐 매우 자연스러운, 아니 당연시되는 그것을 앞에 두고 '왜'라..

추억을 더듬어서 [제자들 4호, 1994]

※ 『제자들』 은 미주SFC 소식지 입니다. 이원홍 ※ 이 글은 초대 한국 SFC 운동의 발전을 위하여 수고한 SFC 대선배이신 이원홍 동문이 1994년 미주 SFC 대회에 참석하면서 강사이신 최학량 목사님에게 전달하신 원고이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한국 초창기 학생신앙운동 수련회의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948년 여름, 숨이 막힐듯한 신학교 강당에서 땀으로 옷을 적시면서 한 시간을 아멘으로 보냈다. 이것이 바로 제1회 하기 수양회였다. 박윤선, 한부선, 한명동, 최의손, 마두원, 송상석, 노진현, 이상근, 이인재. 이 여러 목사님들을 강사로 1948년 8월 2일부터 7일까지 고려신학교 강당에서 열렸던 것이다. 고등학교 (남) 31명, (여) 6명 / 중학고 (남) 68명 (여) ..

학원 복음화 운동 취지문 (1971년)

이 땅의 학생운동은 반항과 저항의 운동으로 일관되어 있다. 일제의 식민주의에 대한 반항 공산세력의 학정에 대한 반항 그리고 오늘날의 현 정부시책에 대한 소위 알레르기적 반항등은 반항 이 곧 이 나라 학생운동의 전통적 특성으로서 정형화(定型化) 되어졌음을 의미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역사적으로 뿌리 박혀온 외세와 권위주의적 통치권에 대한 한국인의 고질적 피해의식의 발로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SFC 운동은 이러한 외부체제에 대한 반항과 저항의 운동이 아니었다. SFC 운동은 이 나라 사회의 갖은 혼란과 부정(否定)과 방황의 세대들에게 오랜동안 압박과 구속만을 강요당해 온 이 땅의 백성들에게 새 하늘 새땅 을 약속해 주고 진리의 불기둥 말씀의 구름기둥 이 된 창조적인 학생운동이었다. 우리의 강령..

70년대 대학 SFC의 학원복음화 운동의 시작과 전개 [교회건설 6호, 1991년]

나삼진 목사 총회교육위원회 대표간사 SFC 40년사 편찬위원회 주간 70년대 초기의 대학 SFC를 중심한 학원복음화운동은 SFC역사의 중요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 당시 서울, 부산, 마산, 대구 등 중요한 대도시의 대학을 중심으로 한 학원복음화운동으로 말미암아 70년대는 SFC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변화된 시기라 할 수 있다. 일로 말미암아 각 대학 SFC조직, 지도자 교육과 훈련, 대학생 인구의 저변 확대 운동방법론 연구와 프로그램 개발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 시기에 헌신한 이들이 중심이 되어 그후 SFC동문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70년대 대학 SFC를 통한 학원복음화 운동의 시작과 전개과정을 살핌으로서 대학 SFC의 역사를 정리하고자 한다. 1. 70년대 대학SFC의 활성화의 시작 ..

2023년 교육영역 컨퍼런스 후기

우재석 운동원(20학번, 충남대 SFC, 교육영역장) 안녕하세요. 교육 영역장 우재석 운동원(충청U, 충청동부지방)입니다. 지난 10월 27일 부산에 위치한 사상교회에서 ‘그리스도인 교사로 살아가기’라는 주제로 교육 영역 컨퍼런스를 진행하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SFC 영역 운동은 침체기를 겪었습니다. 이전 교육 영역장으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기에 어떻게 모임을 준비하고 이끌어야 할지, 어떻게 운동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지에 대하여 준비과정 중에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강사 및 장소 섭외에 어려움도 많았고, 물질적인 부분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 동역자를 붙여주셨고, 교육 영역 컨퍼런스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주제 강의는 부산교대 SFC 동문이자, 거창 샛..

여호와닛시, ARK 편집장 인터뷰 [교회건설 13호, 1996년]

읽혀지는 글이 아닌 변화시키는 글 - 여호와 닛시 - 박수정 운동원 부산대 영문과 ’94학번으로 부산대 여호와 닛시 편집장을 맡고있다. 수많은 서적들, 정보 소식지, 잡지류, 광고지 등 각종 인쇄물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이 때에, 이런 류의 글들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그 글이 읽혀지게 할 수 있을까가 아닌가 싶다. 많은 읽을거리들이 그 목적을 다 이루기도 전에 그 내용이 검토되고, 의도하는 바대로 전달되기도 전에 쓰레기로 버려지는 일이 다반사이다. 이것은 수요할 수 있는 양에 비해 공급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음에서 어느 정도 기인하므로 독자의 입장에서도 쓰레기와 글을 선별할 수 밖에 없음이 당연하다. 현재 부산대학교 학생신앙운동 내에 있는 ‘여호와 닛시’ 지의 편집장으로 섬..

문서운동의 시작과 끝 [교회건설 13호, 1996년]

원남숙 간사 부산대 물리학과를 졸업하시고 부산지역S.F.C.에서 사역하고 계신다. 1. 들어가며 - 어슴프레한 기억 하나 국민학교를 다니기 전이다. 그러니까 70년대 중반쯤 되었을 것이다. 책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께서는 힘든 살림중에도 늘 책 사기를 아까워하지 않으셨는데 사신 책을 신문지나 문종이 등으로 거풀을 입혀서 보시고는 다른 분들에게도 빌려 주시곤 하셨다. 그렇게 돌려본 책은 언제나 다 낡은 후에야 책장에 꽂힐 정도로 많은 분들의 손을 거쳐야 했다. 책이 귀하던 따라, 아니 책을 살 돈이 더 귀했는지도 모르지만, 그 때에 베스트셀러였던 천로역정이나 최자실 목사님의 간증집, 안이숙여사님의 간증집, 그리고 신구약 문답집 등. 다 낡아서 테이프도 몇 번씩 붙인채로 책장 한 구석에 앉아 그 시절을 말해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