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합니다! SFC/SFC 역사 18

문서운동의 시작과 끝 [교회건설 13호, 1996년]

원남숙 간사 부산대 물리학과를 졸업하시고 부산지역S.F.C.에서 사역하고 계신다. 1. 들어가며 - 어슴프레한 기억 하나 국민학교를 다니기 전이다. 그러니까 70년대 중반쯤 되었을 것이다. 책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께서는 힘든 살림중에도 늘 책 사기를 아까워하지 않으셨는데 사신 책을 신문지나 문종이 등으로 거풀을 입혀서 보시고는 다른 분들에게도 빌려 주시곤 하셨다. 그렇게 돌려본 책은 언제나 다 낡은 후에야 책장에 꽂힐 정도로 많은 분들의 손을 거쳐야 했다. 책이 귀하던 따라, 아니 책을 살 돈이 더 귀했는지도 모르지만, 그 때에 베스트셀러였던 천로역정이나 최자실 목사님의 간증집, 안이숙여사님의 간증집, 그리고 신구약 문답집 등. 다 낡아서 테이프도 몇 번씩 붙인채로 책장 한 구석에 앉아 그 시절을 말해 주..

'80년대 SFC의 역사에 대한 평가와 전망 [교회건설, 1991년]

권오헌 간사들어가면서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왜냐하면 역사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닌 한 시대를 바라보는 사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90년대에 들어섰다고는 하나 80년대의 10년 간이 과연 벌써 그 의미를 평가할 만큼 시간이 지났는지는 의문이 많다. 80년대에 SFC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은 이들이 지금도 여전히 여러 면에서 SFC와 많은 관계를 하고 있는 상황이 더욱 평가를 힘들게 한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되도록이면 가치 평가는 줄이고 80년대에 SFC에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만 짚어 보고자 한다. 물론 어떤 사건이 중요하다고 보느냐에 이미 평가가 포함되지만 그것은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어차피 이 글이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아닌가 하기 대문이다. 80년대 SFC를..

SFC로의 부름 (부산지역 '92 신입생 도움글 "함께 가자 이 길을",1992)

현성길 간사(대구지역) 들어가면서 교회사를 돌아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세계의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선도적인 움직임마다 학생들이 결정적인 역할들을 감당하였음을 인정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상실되어 있는 상태에서 교회가 새롭게 힘을 얻고 복음화의 추진력을 얻게 되는 것도 바로 학생들의 비전과 기도의 노력의 덕분이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새롭게 되어질 때 마다 하나님은 학생들을 사용하신 것이다. 1710년의 겨자씨 모임의 진젠돌프, 1762년의 영국 홀리클럽의 찰스 웨슬레의 형제단 운동, 1779년의 캠브리지 대학시절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수많은 그리스도의 헌신자들을 만든 찰스 시므온, 1882년의 캠브리지 대학에서 무디의 설교로 도전받아 중국 내지 선교를 자원한 캠브리지의 7인의 스터드와 그의 ..

전국학생신앙운동보고서 (1962년, 고신총회 보고서)

학생신앙운동의 가는 길 1. 학생신앙운동에 대하여 총회 산하의 여러 교회들이 학생들의 지도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생각할 때에, 이들의 지도는 곧 교회에서 가장 귀한 살림 밑천을 작만하는 일인줄 압니다. 이제 각 교회에서 또 지방에서 학생지도에 관심을 가지신 총대 여러분께 참고가 되기를 바라서 학생신앙운동의 내용을 말씀 드리고저 합니다. 2. 학생신앙운동이란? SFC라 함은 영어의 Student For Christ(Movement)의 약자로서 번역하면 "그리스도를 위한 학생운동체" 란 뜻이니 학생신앙운동(SFC)이라고 그 명칭을 한정한 것으로 성격과 목적을 규정하면 다음과 같은 강령을 가지고 있다. 1. 우리는 전통적 웨스트 민스터(Westminster)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문답서를 우리의 신조..

SFC 선교역사 <SFC 선교백서>

✈ SFC가 감당한 세계복음화 강령구현 역사 1. 관심기: 1990년까지 SFC의 선교에 대한 첫 역사는 1964년에 대만의 김영진선교사를 돕기 위해 각 교회SFC에 선교부를 두어 선교모금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1966년에는 선교헌금을 위해 달력을 발간키로 하였다. 본격적인 선교에 대한 관심은 대학생대회에서 표출되었는데, 1984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주제로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과 헌신을 촉구하는 제 11회 대학생대회를 덕유산에서 개최했었다. 이 때 주 강사는 류환준 선교사였으며, 그 외에 선교현장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많은 선교사들을 모셨다. 이때 전 세계의 선교지를 7개권별(일본, 동남아, 회교권, 구라파, 아프리카, 중남미, 공산권)로 나누고 운동원들이 각 선교지를 연구하고 발표한 후 선교사..

I 학생신앙운동 역사개설

※ 이 글은 1996년에 발간된 『학생신앙운동 ABC』 1판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1997년은 학생신앙운동(Student For Christ)이 이 땅에 태어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이 운동은 해방직후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기도의 작은 모닥불로 타오르기 시작하여 1947년에 '학생신앙협조회'란 이름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2년 7월에 이르러 '전국학생신앙운동'이란 이름으로 비로소 전국적인 운동의 첫걸음을 떼었다. 이러한 학생신앙운동의 태동과 시작은 한국사나 교회사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국사에 있어서는 가장 큰 격동의 시기인 해방과 6.25 전쟁이 있었고, 교회사적으로는 일제하에서 행했던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운동과 더불어 해방 이후의 교회와 신학재건운동이 진행되는 때였다. ..

SFC 역사개설

※ 이 글은 1983년에 발간된 『학생신앙운동의 이념과 실제』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I. 배아기(1945.8~1946.9) 1945년 8월 15일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일본 태양신의 탄압에서 신앙의 자유를 얻은 영적인 출애굽이라 할 것이다.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에 대한 탄압은 신교, 특히 장로교회에 극심하였다. 신사참배 강요에 구교는 무조건 수락하였으나 신교는 결사 반대하다가 1938년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이행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보수신학의 보루였던 평양신학교는 무기휴학을 선언하고 무저항의 항의를 선언하게 되었다. 이런 결과로 다수의 교회 지도자들은 투옥되고 각 교파는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이라는 명칭으로 일본 기독교단에 소속되어 버렸다. 뜻있는 신도들과 종들은 투옥..

SFC 이해를 위한 시도

※ 이 글은 1993년 발행된 "학생신앙운동 간사사역안내서"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1. 들어가면서 학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런 내용의 글이 한 사람의 견해로 집약되어져서도 안되는 일이며, 그럴 수도 없는 일인 줄 알면서 이 글을 써 나간다. 그러므로, 이 글을 발제로 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권위가 있으면서 공식적인 입장이 정돈되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학신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 속에서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원리를 가지고 지나간 역사를 다시 점검하고 평가하면서 미래에 대한 우리의 지향점을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이런 작업이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