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눕니다! SFC/SFC 운동원 이야기

전국 알돌대회를 다녀와서 [교회건설 5호, 1992년]

노랑 테니스 공 2023. 10. 25. 11:40

최우혁 (부산대 경제 3)

1991년 2월 18일에서 22일까지 제 9차 전국 알돌 대회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쫓아(딤후 1:18)'란 주제로 부산 수영 중앙 교회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 제7차, 제8차 대회를 통해서 논의되어진 SFC 의 정체성과 방향성이 자연스럽게 정리되어졌고, SFC와 고신 교단과의 관계는 SFC는 고신 교단에 도전을, 고신 교단은 SFC에 바른 신학과 지역 교회와의 연관을 제공해 주는 관계로 해결되었다. 특히 SFC와 고신 교단과의 문제가 '개혁주의 기독 학생의 역할과 그 비전' 이라는 주제로 있었던 패널 토의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논의되어졌을 뿐 아니라, 질문을 통한 학생들의 패널 토의 참여를 통해서 위왕 같은 결론에 이르렀던 것은 매우 바람직하였다.

이 대회 기간에 진행된 프로그램 중 저녁 경건회의 말씀을 요약하면서 개인적인 SFC 방향에 대한 소견을 말하고자 한다. 

저녁 경건회의 본문 말씀은 요한복음 13, 14, 15, 16장이었고, 오병욱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정하신 때, 즉, 죽음의 때를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제자들에 대해 걱정하셨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알돌들에 대한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죽기까지 존재하며, 오히려 영원까지 변치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떠나기 전에 종의 모습과 같이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베드로의 발을 씻겼다. 베드로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말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이 죄를 씻는 상징적 행동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신 목적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임을 보여주셨다. 선생이 제자에게, 상전이 종에게,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발을 씻겨 줌으로써 인간들 사니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마침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팔 때가 되었음을 알고, 민망히 여기면서도 마지막으로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라고 새 계명을 주신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떠나는 것을 안 이후 계속해서 근심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나도 다시 올 것이며, 제자들이 거할 처소를 마련한다고 말하면서 제자들을 안심하게 하셨다. 제자들이 3년이나 그와 동행하였지만 믿지 않자, 그가 독생하신, 보이시는 하나님임을 말하고, 그가 한 이적들을 보고서라도 믿으라고 하신다. 

계속해서 그는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기도의 능력과 보혜사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다. 보혜사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말한 모든 것이 생각나게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령으로 인한 평안이 세상 것과 다르다. 그렇지만 제자들이 예수께 속하였고,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세상으로부터 마음과 핍박과 출회와 심지어 죽음까지 당한다. 그리고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또한 이상한 것은 핍박하는 자들이 소위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리 환난에 대해서 말한 이유는 그 때를 당하여 실족하지 않게 함이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뻐하겠고, 제자들은 슬퍼하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날 것과 세상에 대한 승리를 말하였다. 

전국 알돌 대회를 통해서 많은 알돌들이 이 설교 말씀에 새로운 도전을 받았을 것이다. 알돌이 예수 그리스도가 끝까지 그 제자들을 사랑한 것 같이, 맡은 자들을 사랑하여야 겠고, 기도함과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에 대해 승리를 하여야 할 것이다. 특별히 SFC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에 우리의 촛점을 맡추어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러우 가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여러 명령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 교회 공동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SFC 내에서 하나님의 공동체에 대한 깊은 관심과 고민이 있어야 겠다.

이번 대회 기간 중 서로 하나의 공동체가 되지 못함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진정한 SFC 공동체에 대한 도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