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린도전서 1장 23절)
올해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께서 보듬으신 보편 교회의 고백을 꺼내어 “교회”의 의미와 중요성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껏 그래왔듯 다음의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져야만 합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교회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비롯됩니까? 교회는 어떻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까?”
아마 우리 모두 이 질문에 나름의 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겨울도, 교회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와 상관없이 언제나 그랬듯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우리의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며 그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물론 각 지역의 교회와 운동원들이 모이는 시간을 “말씀”을 듣는 시간으로 채우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그 방법이 너무나 평범해 보이고 때론 미련해 보일 수 있습니다(고전1:21). 또한 비슷한 방식과 익숙한 내용으로 진행되는 대회 가운데 단조로움만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평범한 “말씀선포(설교)”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유는 그 “말씀”을 통해 전해지는 대상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고전1:23). 그 “말씀”이 바로 우리의 주인 되십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그 “말씀”이 우리의 죽은 영혼을 소생시키시기에, 우리는 우리의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오직 “오라!(계22:17;사55:1)”하시는 그분의 자비하신 사랑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만 언제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교회와 우리는 모두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칠 줄 모르는 질병, 교회를 향해 무분별하게 날아오는 질타,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예전의 상태에 머무르려는 우리의 나태함, 끊길 줄 모르고 제기되는 성경에 대한 의심들. 이러한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 있을수록 우리는 교회가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실천적인 고민에 몰두하게 됩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어려움을 반드시 감내하며 동시에 우리의 문제에 대해선 속히 회개하며 실천적으로 고쳐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바라보기에 앞서 무엇보다 선행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세대 모든 교회에서 선포된 “복음”을 듣고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말씀선포가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에게 가장 위대하고 탁월한 것처럼, 교회가 교회 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이유 또한 오직 교회의 주인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위대한 창조주, 우리의 모든 죗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유일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철저하게 교회가 선포하고 고백하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고전1:23)”에 의해 정의되고 규정되며 모든 능력과 권세를 부여받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문제보다 크신 그리스도 그분과 그분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과 밖에서 그리스도가 선포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특히나 이런 우리만큼 여러 가지 문제로 아파하던 고린도 교회에 사도 바울이 가장 먼저 전했던 권면은 교회가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다시 교회의 참된 주인이신 그리스도께로 눈을 돌리고, 성령의 능력을 온전히 의지하여 순수한 “복음” 전하는 것(설교)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고전1:10~31).
이번 겨울 우리 모두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무엇보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며, 그분께서 어떻게 교회를 세우시고, 먹이시며, 보호하시는지에 집중해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지금껏 교회에 대하여 개념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배워왔던 예배, 직분, 은혜의 방편 등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품을 중심으로 다시 배워보는 시간을 가집시다. 그리고 그 “복음”이 우리 마음 가운데 심겨질 때 모든 세대에서 그랬듯 복음이 우리 안에 일으키는 역사는 반드시 교회와 나라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