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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돌아가자 : 개혁, 그리고 도전 <1992년 제19회 대학생대회 취지문>

노랑 테니스 공 2023. 7. 14. 17:41

  말씀으로 돌아가자!

  참으로 이 시대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외침이다. 그것은 밖을 향한 것이 아니라 안을 향한 것이며,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향한 것이며, 저희를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것이다. 이것은 형제들이 먼저, 교회가 먼저 말씀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사회를 향한 어떠한 도전도 물거품과 같은 것임을 웅변하는 것이다. 말씀의 기준을 잃어버리고서 세상의 바쁜 현상들에 쫓겨다니는 형제들을 향하여 우리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형제여, 우리 말씀으로 돌아가자."

  사람이 없음도 아니다. 돈이 없음도, 조직이 없음도 아니다. 이 시대가 불의하기 때문도 아니다. -언제 어디매쯤 그 시대가 불의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 다만 주의 백성들이 말씀 위에 견고히 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계시하는 바 분별의 준거를 바르게 제시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힌 바 되지 못했기 때문이며 성령의 역사하심에 온전히 맡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씀의 가장 상식적인 내용인 "회개와 믿음"이 우리 중에 정확하게 적용되지 못하고 있기 대문이다. 누구로부터 시작된 외침인지는 몰라도 운동원들에게서 시작된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은 시간이 갈수록 크나큰 메아리가 되어 울려퍼진다. 그 외침의 의미를 가슴 깊이 되새기며 그범 수련회의 몇가지 의미를 새겨보기를 원한다.

  금번 수련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몇가지 과정을 분리한 것이다. 수련회의 오랜 역사는 눈물의 회개와 결단으로 열매 맺는 부흥의 역사였다. 그래서 다양한 강의나 기가 막한 프로개름의 기법이 동원되지 않아도 그 자체로서 은혜가 되었고 변화가 있었고 사모할만 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세상의 다양한 변화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체적인 사고와 답변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에 다라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운동이 많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구체적인 답변들을 단계적으로 나누어 접근해보고 각 운동원들의 수준에 다라 적절한 안내를 하기 위하여 분리한 것이다.

  4과정으로 분리함에 있어 기본적인 분류기준은 'SFC의 교과과정'에 근거하였다. 이미 6-7년 전부터 SFC교과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시작되었고 "3단계 7과정"의 기본적인 골격을 갖춘 이후 계속해서 임상훈련을 거쳐서 수정해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3단계를 말할 때, '동원 단계', '운동원 단계', '알돌 단계' 라고 명명하고 있으며, 동원 단계는 구원의 확신과 거듭난 생활 과정으로 분리되고, 운동원 단계는 SFC 공동체, 전도 훈련으로 그리고 알돌 단계는 양육과 섬김, 헌신과 위임, 개혁과 도전의 과정으로 각각 나뉘어진다. 이렇게 3단계의 내용을 골격으로 하여 "복음과 생명", "증거와 삶", "개혁과 도전"을 정하였고 특별히 선교헌신자들을 위하여 "선교와 헌신"을 개설하게 된 것이다. 각 단계 별로 대상자들의 구체적인 내용은 팜플렛을 참조하기 바란다.

  새벽 집회와 저녁 집회는 모든 단계의 운동원들이 함께 모인다. 우리 각자의 성숙의 상태는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지만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한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는 시간은 참으로 중요하다. 낮의 강의가 우리의 머리를 시원하게 한다면 새벽과 밤의 집회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세상의 다양한 현상들과 다양한 답변을 구하기만 하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온저히 드리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래전 기독교 세계관 강의를 들은 운동원의 질문은 이러한문제를 정확히 보여준다. "간사님, 저는 많은 기독교 세계관 책도 읽었고, 토의에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이제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저의 삶은 변화가 없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요?"

  우리의 관심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 중에 하나임은 틀림없다. 왜냐하면 막연한 열심은 우리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열심히 기도는 하지만 삶이 신실하지 못한 사람이 있음을 발견할 때면 구체적인 질문에 구체적인 적용의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다양한 관심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사단의 다극화된 전술로 사용되는 징후가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머리를 열심히 굴리며 답변을 구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가슴은 식어지고 냉랭해져 버리는 현상 때문이다. 말씀은 온데간데 없고 각종 책들만 어지럽게 우리의 머리 속을 맴돌고 있음을 본다. 순종보다는 변론을, 헌신보다는 계산을 앞세우는 기이한 현상이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에 다극화된 사단의 전략은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분명한 것은 세상을 금방이라도 품을 것만 같던 답을 얻었을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새 힘과 능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움직임에는 그보다 훨씬 능력있는 무엇이 필요함을 안다. 바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시다. 그 분께서 우리를 다스리시도록 온전히 회개하고 헌신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우리는 이 두 가지 흐름을 균형있게 감당하고자 한다. 막연한 열심으로 교만해진 심령을 깨뜨리며, 커다란 머리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지성을 불태우길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를 보았고 그것을 하나님께 맡겼으니 이제 하나님이 치유하실 것이다.

  그 외에도 캠프 형식에서 중앙 취사를 감당하는 수련회 형식으로 바뀐 것도 변화 중의 하나이다. 캠프의 특징은 여유와 사색, 그리고 은혜를 사모함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프로그램은 저녁 시간과 성경공부 정도에 집중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운동원들의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보다 많은 프로그램을 기획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한 프로그램을 캠프 수련회라는 형식으로 다 담아내기에는 벅찬 것이었다. 탬프에 참여한 운동원들은 밥 해먹는 재미, 구름 바람 산 나무로 엮어지는 자연의 풍미, 텐트 속에서의 밀담, 그늘에서의 여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을 기대했다가, 쫓기듯 4박 5일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먼 산이 눈에 들어오던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부산에서 만났다. 학생신앙운동의 진원지이며 뿌리가 스미어 있는 부산에서 제19회 대학생수련회를 가진다. 자신의 회개로부터 시작한 이 운동을 이어받은 우리는 역시 우리 속의 회개와 개력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외침과 자구적인 몸부름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하여 세상을 향하여 도전하길 소망한다.

말씀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