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합니다! SFC/강령 구현

SFC 신앙 자세 <학생신앙운동의 이념과 실제, 1983>

노랑 테니스 공 2023. 5. 11. 04:31

 
 
SFC의 신앙자세는 이른바 SFC의 정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복음적 신앙, 개혁신앙 순교정신을 기초로 하는 것으로 운동원 각자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신앙과 생활의 확고부동한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 자세를 일컬어 SFC 신앙자세라고 한다. 거의 모든 학생신앙단체들이 외국에서 들어왔는데 반하여 (주로 미국, 영국 등에서 발생하여 재정과 프로그램과 기획 일반을 지원받고 있다.) SFC는 우리의 것으로 그 설립과 이념과 목적이 순수하며 많은 어려운 과제를 통하여 꾸준한 발전을 도모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SFC의 정신자세는 그 운동이 어떤 충동이나 자극이나 주어진 여건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 아닌 만큼 적극적이며 자발적이며 헌신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다. 더우기 그 신앙 자세의 유형에 있어서 다른 신앙 단체와 비교될 수 있을 만큼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신앙의 독특성은 무엇인가?
 
1. 알돌의 자세이다.
 
근 4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SFC는 국내외에 많은 선배들을 배출하여 왔다. 그들은 후배들을 위하여 영적, 지적, 물질적, 시간적인 성원을 아끼지 아니하고 투자해 왔다. 그동안 선배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는 가운데 후배 운동원들에게는 위대한 별명이 하나 붙었다. 선배들은 격식도 없이 오직 신앙운동을 위하여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 오는 후배들을 볼 때 든든한 기분, 웃음띤 어조로 "악동"이란 애칭을 붙여 주었던 것이다. 1971년 동기 수양회를 기하여 가열된 이 악동은 "알돌"로 불리워졌고 이 알돌은 해를 거듭할수록 성경에 나타난 돌의 영적인 뜻을 음미해 가면서 SFC 자세의 한 모형으로 형성된 것이다. 성경에는 여러 모양의 돌이 나타나고 있다. 이 돌들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독특한 돌로서 그 의미는 여러가지가 된다. SFC 운동원은 그리스도의 군병들이므로 이와 같은 독특한 돌들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작은 돌이 되는 것이다.
 
① 산돌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고 하였으니 예수님은 과연 산돌이시다. 산돌이시기에 생명을 공급해 주시고 생명수를 주신다. 산돌이시기에 우리를 죄악에서 구속하여 자기의 친 백성을 삼으시고 영생의 복을 내리신다. SFC의 생명력은 이 산돌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이 생명을 지니고 학원과 국가와 세계에 나아가 그것을 이식하며 공급해야 한다. 작은 산돌인 SFC의 책임은 매우 큰 것이다.
 
② 반석 :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서는 "다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 하였고, 이사야 28장 16절에는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돌이라" 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반석이시며 기초석이 되신다. SFC는 중보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반석 위에, 기초석 위에 서 있는 셈이다. 어느 인생도 신앙 단체도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서 있지 아니하면 헛수고 할 뿐이다. SFC는 철저하게 그리스도 신앙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이 위치와 좌표의 정립은 SFC의 존립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이다.
 
③ 머릿돌 : 시편 118편 22-23절에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버리신 바 되어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인생의 구주로 높이셨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완전히 그리고 단번에 포기하시고 영원히 낮아지셨으나 하나님은 버린 돌을 요긴한 집 모퉁이의 돌로 들어내셨다. 이 기이한 일이 누추한 우리를 SFC 운동원으로 삼으셨다. 머릿돌은 방향석이다. 모든 역사와 세대와 사건과 일의 방향은 그리스도가 주장하신다. SFC의 방향도 머릿돌 되신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이 인도하시는대로 우리는 믿고 따라 나선다. 더욱 SFC는 이 세대의 살 길,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④ 모퉁이 돌 : 베드로전서 2장 6절에 "보라 내가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고 하였다. 모퉁이 돌은 두 벽을 연결하는 연결석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을 화해시키신 그리스도는 우주의 연결석이 되신다. SFC는 그리스도를 모시므로 화해, 협동, 조화의 정신을 가지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SFC는 학원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연결석의 책임을 갖게 되는 것이다.
 
⑤ 뜨인 돌 : 다니엘 2장 34절에는 "또 왕이 보신 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라고 하였고 다니엘 2장 45절에는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하신 것이라" 고 하였다. 뜬돌 역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과 종말을 심판하시며 모든 죄악과 불법을 부숴버리고, 말살시키시는 파괴적인 심판석이 되신다.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 죄악이 머물 수 없으며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는 곳에 불법이 견디지 못한다. SFC도 뜬돌되신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작은 뜬돌의 구실을 해야만 한다. 우리 사회의 부정과 불의를 몰아내고 부조리와 사치와 허영과 의식을 쳐부수는 파괴석의 책임을 지녀야 한다.
 
⑥ 흰돌 : 요한계시록 2장 17절에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은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승리의 흰 돌이 되신다. 그에게는 실패가 있을 수 없고 시행착오가 나타날 리 만무하다. 사탄의 세력도, 악령의 권세도 인간의 어떠한 모략도 그의 능력 앞에서는 무력하다. SFC는 승리의 흰 돌되신 그리스도의 군병으로서 기어코 복음으로, 말씀으로, 진리로 이들과 싸워 죄악을 정복하고 이길 것이다.
 
이와 같이 SFC는 알돌의 자세를 지니고 있는 만큼 그 의무와 책임에 있어서 막중하며 그 성격도 독특하다.
 
2. 씨알의 자세
 
SFC는 열매를 맺고 땅을 푸르게 하며 생동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씨알의 자세를 장신자세의 한 모형으로 취한다.
 
마가복음 4장 1절에서 32절을 참고하면 씨 뿌리는 운동이 묘사되어 있다. 성경에 나타난 씨뿌리는 운동은 천국교회의 운동이요 복음 전파와 구령운동으로 상징된다. 이 복음 즉 씨가 여러 유형의 밭에 뿌리워져 어떻게 열매를 맺혔는가의 상황을 보여준다. 또한 마태복음 13장 37-39절에는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인생들을 사용하시어 천국의 복음을 세상에 뿌리고 계신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하였으니 SFC 운동원은 열매 맺는 씨요 알인 것이다. 그래서 씨알이라고 부른다. 씨알이기에 충실한 알곡으로서 구별된 종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SFC 운동원은 하나님의 사역에 생명의 종자가 되는 것이다. 씨알의 자세에는 4가지 관련된 의미가 있다. 
 
① 좋은 땅 : 마가복음 4장 3-8절에는 여러 종류의 땅이 있다. 씨가 길가에 떨어지고,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고, 가시떨기에 떨어지고 또한 좋은 땅에 떨어졌다. 씨 짜체는 충실하고 결실한 소지가 충분하였으나 밭이 문제가 되어 있다. 땅과 밭은 인생의 심령이기도 하고 인생의 인격과 마음에 영향을 주는 황경, 어떤 일에 대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SFC 운동원은 씨알로서의 갖추어야 할 요소를 잘 구비해야 하지만 또한 우리의 주위 환경, 분위기, 우리의 학원, 우리의 사회의 정화에 관심을 가지며 정력을 쏟아야 하겠다. 사회의 구조악은 선하고 의롭고 경건한 SFC 운동원에 의하여 구조 개혁이 되어야 한다. 전체 혹은 대부분이 약하다고 하여 개체인 내가 포기할 것이 아니라, 전체에 대한 개체의 책임을 가지고 꾸준히 전진해야 함도 여기에 있다. 복음은 상황에 대하여 긴밀한 접촉을 요하는 만큼 SFC 또한 우리 주위의 신앙과 생활의 개혁에 깊은 관심과 실천이 따라야 한다.
 
② 가라지와 알곡 : 마태복음 13장 24-30절에는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렸는데 잘 때에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고 하였다. 종들은 주인에게 "뽑기를 원하시느냐" 고 여쭐 때에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추수 때에 가라지는 먼저 뽑아 불사르게 단을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리라" 고 하였다. 여기서는 씨가 중요하다. 알곡을 뿌리지 아니하고 가라지를 뿌리게 될 때 거기에는 문제가 생긴다. 가라지가 들어온 곳에는 생존경쟁의 투쟁이 있고 지역확보의 암투가 일어난다. 당을 짓는 무리들의 도전과 인본주의, 형식주의, 외식주의, 개인주의, 자유주의의 물결이 알곡들의 장래를 위태롭게 한다. 그러나 알고들은 쌍ㄹ로서의 개체 실존을 견지하여 그 환경에서 최고의 수확을 거두어야 한다. SFC는 이같은 사명을 느끼고 일로 매진하여 나가야 하며 위대한 알곡 SFC 운동원들이 배출되어야 한다.
 
③ 제 3의 힘 : 마가복음 4장 26-27절에는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고 하였다. 씨도 밭도 마련되거나 언급된 바도 없다. 밭 갈고, 씨뿌린 일한 흔적도 없다. 농부는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사이에 씨가 났고 자랐다. 28절에는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고 함을 보면 농부가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었다. 이는 씨와 밭도 아니고, 농부의 수고나 땀흘림도 아니다. 오직 제 3의 힘에 의하여 이룩된 것이다.
 
이 새로운 제 3의 힘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의사들이 진찰을 하고 처방과 진료를 마친 후에는 환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 그런대 기대하는 바 이상으로 효과를 보고 치유될 때 이것을 의학적 은혜(medical grace)라고 한다. 또한 농부가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수고하여 농사를 지었다. 그는 얼마의 솣출이 있으리라고 기대하는데 그 이상의 수확이 나올 때 이것을 가리켜 농산적 은혜(Agricultural grace) 라고 한다. 제 3의 힘 곧 성령의 역사가 작용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실현되는 이 위대한 힘은 SFC 정신자세의 배경이요 씨알의 기본적 기대이며 믿음이며 소망이다.
 
④ 겨자씨 : 마가복음 4장 30-32절에 보몀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를 나타낼꼬,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대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무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고 했다. 작은 씨는 새들이 먹어버리면 배설물로서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새들의 배설물이 될 뻔한 씨는 큰 나무로 자라고 새들은 자신이 먹어버린 씨를 통해 나무가지에 깃들이게 된다. 그러므로 씨는 새를 포용하고 있다. 그런데 씨는 다음의 의지가 있다.
 
(가) 퍼지는 의지 : 씨는 동물이나 인간을 통하여 멀리 퍼진다. 몸에 붙어서 퍼지기도 하고 먹혀서 퍼지기도 한다. 또한 열매 자체가 터져서 씨를 퍼지게도 하고 바람이나 물에 의하여서 퍼지고 있다. 씨는 멀리 퍼지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SFC는 학원을 복음의 전진기지로 삼고, 사회와 직장으로 배출되어 그 곳에서도 복음의 전초기지를 확보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는 곳에 SFC의 퍼지는 의지도 실현된다.
 
(나) 녹화의 의지 : 씨가 일단 싹이 나면 푸르름이 있다. 황무한 산과 들을 앙상항 이른 봄의 가지들을 녹화시켜 온화하고 부드러운 옷을 입혀준다. 씨가 있는 곳에는 녹화가 있고, 풍요함이 있고 안식과 위로가 있다. 녹화의 의지는 씨의 역사요 내용이다. SFC가 이르는 곳에는 안식과 평안과 구원의 소식이 있어야 하며 사막이 변하여 옥톨가 되고 이스라엘의 이상적 세계가 동경되었던 것처럼, SFC는 학원과 사회와 우리의 국가를 휴식시켜주고 그늘을 제공하며 한국 정신사의 녹화지대(green belt) 를 제공해야 한다.
 
(다) 잠재적 의지 : 모든 씨앗은 동물이나 인간에게 먹히면 배설물 밖에 안된다. 그러나 일단 땅에 떨어지면 자라나고 열매를 맺는다. 수확은 언제나 종자보다는 많고 또 우수한 것을 내는 것이다. 빙산의 묻힌 부분이 큰 것처럼, 인생의 후반부가 성실한 것처럼, 씨의 잠재적 의지는 굵고 넓게 뻗고 있다. SFC 운동원 개개인은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지마는 그들이 살다간 곳, 지나간 터전, 수고하고 땀흘린 장소에는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들로 꽃피어야 한다. 요한 웨슬레는 "내가 90세를 산다고 하면 89세를 준비하고 나머지 1세를 하나님께 바치겠다." 고 말하였는데 우리들도 아름다운 준비로 큰 잠재적 의지를 나타내어야 한다.
 
(라) 희생의 의지 : 밀알 곧 씨는 땅에 떨어져야 한다. 떨어진 씨는 묻혀서 썩어야 한다. 떨어지고, 묻히고, 썩어지는 것은 씨의 희생의 삼 단계를 말해주는 것이다. 떨어짐은 겸손을 뜻하고, 묻히는 것은 은밀한 행동을 의미하고, 썩어지는 것은 완전한 헌신을 보여준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고 한 것 같이 씨는 희생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SFC는 이 세대에 머물러 하나님의 숨은 영광과 감추인 섭리를 겸손과 헌신의 생활로 개발하고 찾아내어야 할 것이다. 밀알의 희생적 정신을 우리는 닮아야 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 은밀한 가운데 숨어 성실하고도 정직하게 일해야 함도 이 때문이다. SFC는 씨알의 자세를 굳건히 지니고 북음의 충족한 여건을 희생과 의지로 절대량을 채워가면서 전진 또 전진하는 독특한 성격이 있다.
 
3. 경주자의 자세이다.
 
SFC는 자신의 영혼과 이웃의 영혼을 위해서 부지런히 뛰어가는 경주자이다. 개개인의 영적인 성장을 기하려고 그리스도를 항하여 달리고 있으며 이웃의 영혼을 위하여 학원과 사회와 세계로 뛰어가고 있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을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 고 하였다. SFC 운동원은 받은 시간과 감정과 지식과 젊음과 힘과 내용을 잊지 않고, 힘차게 앞을 향하여 달려나간다. 오직 그리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쫓아가는 것이다. 경주자에게는 세 가지 태도가 필요하다.
 
① 절제가 필요하다 :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라고 하였다. 우리의 정욕과 탐심, 불순한 동기와 악한 과정을 절제해야 한다. 너무 열심을 내어서도 안되며 너무 방관하여도 안된다. 왜냐하면 지나친 열심은 신비주의자가 되게 하고, 지나친 방관은 이기주의자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는 것은 승리의 지름길임을 인식해야 한다. 경주자는 경주에 장애가 되고 올무가 되는 몯느 것을 끊어버리는 절제가 필요하다. SFC는 이 세대의 헛된 영광을 절제하고 세차게 복음의 바톤을 쥐고 달려나갈 사명이 주어졌다.
 
② 향방있게 할 필요가 있다 : 고리도전서 9장 26절에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 하기를 향방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라고 하였다. 경주자는 목표 과녁이 뚜렷해야 한다. 지향점을 향하여 세차게 나가야 한다. 푯대가 없는 것은 허공을 치는 것과 같아서 손실도 많고, 패배의 구덩이를 스스로 파는 위험성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치시는 작은 일을 하실 때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것을 내다 보셨다. 그러므로 SFC의 모든 활동의 목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가 되어야 한다.
 
이 목표 속에는 짜증도 나태함도 없고 싫증과 권태도 없다. 이 향방 속에는 개인적인 행동도 없고 형식과 외식도 없다. 오직 성실과 근면과 정직과 인내의 값진 열매가 있을 뿐이다.
 
③ 복종할 필요가 있다 : 고린도 전서 9장 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 고 하였다. 바울은 자신을 무엇으로 쳐 복종시켰을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주권을 믿고 그 말씀의 지시, 권고, 명령이면 그 내용이 어떠하든지 간에 자신을 말씀에다 복종시켰다. SFC 운동원은 하나님의 말씀과 권위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또한 질서와 법을 경주자가 순응해야 하는 것처럼 운동원은 지도자와의 공약에 순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미 투자하셔서 우리가 뛰어들기를 요구하시는 전역에 내가 가진 달란트는 순종의 바퀴를 달고 달려나가는 것이다. 경주자는 상을 얻는 자이다. 우리는 복음적 승리를 위하여 뛰어가는 자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우리에게 맡기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해야 할 자들인 것이다. 우리는 영생이라는 최후의 상급을 바라보고 우리의 경주를 게을리 할 수 없으며 어떠한 고난도 달게 받아야 한다.
 
경주자는 상을 얻기 위해 세가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① 인내의 원칙 : 히브리서 12장 2-3절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고 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을 포기하신 그리스도께서 더 큰 영광을 쟁취하신 것처럼 경주하여 상받기를 바라는 자는 참고 참는 태도가 필요하다. SFC는  현실의 모든 제약에서 인내하는 자들이다 위대한 영광의 포기는 위대한 신앙의 담력을 낳는 것을 SFC는 명심한다.
 
② 법적인 원칙 : 디모데후서 2장 5절에는 :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라고 하였다. SFC는 말씀과 경건과 질서와 거룩과 예배와 양심의 법을 지키므로서 SFC의 강령을 강력히 시행하는 자들이다.
 
③ 선한 싸움의 원칙 : 디모데전서 6장 12절에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믿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라고 하였다. SFC는 믿음으로 돌진해 가면서 싸우는 그리스도의 병사들이므로 선한 증거, 거룩한 증거, 의로운 증거를 항상 나타내어야 한다.
 
4. 기타의 자세
 
SFC는 그리스도의 형상이요(롬 8:29, 갈 4:19), 향기요(고후 2:15), 편지요(고후 3:2~3), 흔적이요(갈 6:17), 병기요(롬 6:13, 고후 10:4), 후사요(롬 8:17, 엡 3:6), 증인이다(벧전 5:1, 계 17:6). 사도 바울이 말한 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리하리라(갈 6:14)" 와 같이 모든 SFC 의 정신자세는 어디까지나 SFC 운동원 자신들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진정한 SFC 운동원들이라면 무엇보다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기며, 또 그리스도를 잃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더 잘 전할까에 관해 기도하며 계획해야 될 줄 안다. 나 자신이 주인이 되는 생활이라면 또 수고와 허탈 밖에 남는 것이 없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되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잠 3:6-8)" 참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오묘한 진리로 인하여 성경을 읽는 자세, 기도하는 자세는 자발적이고 실제적인 SFC의 자세인만큼 경건을 습관화하고 신앙과 인격과 지혜와 지식과 건강과 물질을 훈련받아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도 이루어진 것 같이 우리 SFC의 세데에서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