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C가 감당한 세계복음화 강령구현 역사
1. 관심기: 1990년까지
SFC의 선교에 대한 첫 역사는 1964년에 대만의 김영진선교사를 돕기 위해 각 교회SFC에 선교부를 두어 선교모금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1966년에는 선교헌금을 위해 달력을 발간키로 하였다. 본격적인 선교에 대한 관심은 대학생대회에서 표출되었는데, 1984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주제로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과 헌신을 촉구하는 제 11회 대학생대회를 덕유산에서 개최했었다. 이 때 주 강사는 류환준 선교사였으며, 그 외에 선교현장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많은 선교사들을 모셨다. 이때 전 세계의 선교지를 7개권별(일본, 동남아, 회교권, 구라파, 아프리카, 중남미, 공산권)로 나누고 운동원들이 각 선교지를 연구하고 발표한 후 선교사 및 선교전문가들을 모시고 강의를 듣고 구체적인 비전을 찾았다. 당시에 약 700여명의 운동원들이 대회에 참석했는데 이중 90여명의 선교 헌신자가 배출되었다. 이것은 당시 세계복음화에 대한 강령구현 의지가 강했음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1990년까지 SFC는 선교에 대한 강조는 있었지만 헌신한 이들에 대한 후속 프로그램이 없었고 이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SFC안에 아직은 선교에 대한 역량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40년의 SFC 역사가 흘렀지만 세계복음화에 대한 의지는 미약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운동이라는 잇점을 안고 있는 SFC가 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과 세계 복음화의 사명을 강령 제2항에 명시하고는 있지만 강령구현에 대한 구체적 의지는 약했던 것이다.
2. 준비기: 1991-1996년
1991년에 무주 구천동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이라는 주제로 선교대회를 개최하였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면 오전에 “타문화권 선교와 SFC의 역할”이라는 주제 강의가 있었고, 오후에는 “총체적 선교로서의 선교현장에 대한 이해” 라는 제목 하에 선택식 특강이 있었다. 그리고 선교지 O.L과 박람회를 통해서 국내외 파송선교단체들의 사역을 소개하여 앞으로 선교사역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저녁에는 일본 선교사이신 변재창선교사의 메시지가 있었다.
91선교대회는 SFC의 세계복음화 강령구현을 위한 하나의 분기점으로 평가할 만하다. 91대회 이 후에 “SFC 해외선교위원회”가 결성되어 선교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모든 선교업무를 관장하여 선교 헌신자 발굴 및 관리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또한 세계 복음화 뿐 아니라, 농어촌, 산업, 빈민선교에 대한 총체적 선교를 제시하였으며, “학원과 국가와 세계를 위한 나의 헌신”이라는 결신서 속에 후속 프로그램을 제시하여 대회를 마친 후에도 선교 헌신자를 관리ㆍ훈련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그래서 91대회 이후 1992년 2월부터 필리핀 비전트립을 시행하여 선교관심자들에 대한 후속 프로그램을 실시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SFC선교는 동기유발과 일부 관심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 단발성의 비전트립에 머물렀다. SFC선교에 대한 의식 함양과 선교운동이 전 공동체적으로 함양되는 계기는 바로 1996년 선교한국대회를 SFC가 주관하면서부터이다. 선교한국대회는 1988년 8월 8일, 북미의 학생자원자 선교운동이 시작된 지 100년이 되던 해에 “세계복음화와 한국 청년․학생들의 책임”이라는 주제로 첫 대회가 열린 이후 2년마다 학생선교단체들이 주관단체로서 섬기며 개최되었는데, 1988년 JOY, 1990년 IVF, 1992년 YWAM, 1994년에는 ESF, 그리고 1996년에 SFC가 섬겼다. SFC는 선교한국대회를 주관하면서 ‘선교지향성’을 SFC의 강령이 표방해 온 세계복음화와 연관성을 지으면서 선배들의 오랜 숙원인 세계교회건설과 세계복음화를 우리의 세대에 우리의 손으로 이루어 보자는 열망이 생기게 되었다. 특히 엄청난 교회적 자원을 가진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선교사로 나가 있는 동문 및 선배들, 간사, 운동원 등을 총동원하여 선교적 과업을 달성해 보자는 구체적인 비전을 갖게 된 것이다.
3. 전환기: 1997년
1997년은 SFC선교의 획을 긋는 중요한 기점이다. SFC50주년 “변화와 확장” 그 중에서 ‘확장’이란 부분에서 해외지부가 개척되기 시작한 것이다. 1997년 마닐라지부 개척자로 조현종간사가 헌신하면서 마닐라지부 개척 뿐 아니라 SFC해외지부 개척의 첫 삽을 뜨게 되었다.
기존의 SFC 선교전략은, SFC는 파송단체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면서 SFC는 못자리 선교 운동을 감당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때부터 SFC의 해외선교 전략은 선교동원운동과 해외SFC건설로 바뀌었다. 즉. SFC의 선교사역은 중고대학생들에게 선교에 헌신하도록 비전을 심어 인적 자원을 발굴해 내는 선교동원운동과 전 세계 캠퍼스 속에서 개혁주의 기독학생운동을 일으키는 해외 SFC건설을 그 목표로 하게 된 것이다.
4. 해외지부 개척기 : 1998-2009년
1997년은 마닐라지부가 개척되었을 뿐 아니라, 제1회 통일비전트립이 중국 북경과 심양, 연변지역에 실시되었다. SFC 해외지부 개척이 비전트립이 진행되는 것과 맞물리는 정책에 따라 2000년에 김동춘간사를 파송하면서 중국 연변지부가 개척되었다. 2001년 4월 17일에는 GP선교회와 선교협정서를 조인하여 파트너십을 형성하기도 했으며, 2001년 2학기 주력운동으로 ‘선교바로세우기(MBL)운동'이 실시되었다. 2002년 2월 20-22일에는 선교헌신자 수련회를 개최하였다.
한편, 해외지부는 2001년 마닐라지부 2기사역(남효종간사)과 함께, 2002년 북경지부(추성득간사), 2003년 일본지부(손만석간사), 2004년 상해지부(김명식간사), 2005년 몽골지부(차상훈간사)가 차례로 파송되어 해외SFC 개척운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2006년에는 중국 연변지부 2기사역(김도균간사), 2007년 마닐라지부 3기사역(변인섭간사), 2008년 연변지부 3기사역(허태수간사)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학원간사로 필리핀에 홍정훈간사, 상해에 이동선간사가 파송되었다. 그리고 2009년에는 북경지부 2기사역으로 김동춘간사가 파송되었다.
2008년 여름에는 20주년을 맞이하는 선교한국운동(11차 선교한국대회)을 SFC가 또 한 번 섬기게 되었는데, 96대회가 그랬듯이 선교한국대회를 SFC가 치르면서 SFC 안에서 선교에 대한 업그레이드와 전환이 일어났다. 2008년 이후 하나님께서 SFC를 통하여 일하실 선교에 대한 또 다른 부르심과 사명을 기대하면서, 내부적으로 해외지부 및 세계복음화 사역에 대한 계속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온 것이다.
5.변화와 도전기 : 2010년에서 현재
2010년에는 필리핀 일로일로에 박현진간사, 2011년에는 태국에 홍정훈간사, 2012년에는 몽골 2기사역에 박현석간사가 파송되었다. 2012년에는 상해 3기사역에 차상훈간사, 마닐라 4기사역에 남효종간사, 2013년에 북경 3기사역에 허태수간사가 파송배치가 되었다. 이 시기 해외에서 추방 당하는 일들이 생기고, 비전트립에 참여하는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 어떤 비전트립은 시행도 못하는 경우가 생겼고, 그에 반해 인도, 인도네시아, 인도차이나반도, 네팔, 터어키 등으로 비전트립의 나라들은 두렷한 철학 없이 확산되면서 비전트립에 대한 새로운 정책 정립도 필요하게 되었다. 2015년에는 KPM과 MOU를 맺어 SFC협력간사인준과 협력지부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현재 협력지부는 태국 치앙마이, 태국 동북부(빡청), 필리핀 보홀 등이 있다.
✈ SFC 해외선교 전략의 변화
1. 못자리 선교운동
첫째가 “못자리선교운동”이다. 즉, 초창기 SFC는 그저 못자리로서 모판을 잘 만들고 모가 심어지는 것은 다른 영역에서 다른 동문이나 단체, 교회가 감당해야 할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SFC는 선교동원운동을 열심히 펼쳤다.“개혁주의 세계교회건설과 세계의 복음화”는 SFC선배들의 오래된 비전이었지만, ‘세계대학의 복음화’라는 구체적인 비전까지는 접근을 못했다. 국내의 사명에서는 “대한교회건설과 국가와 학원화의 복음화”라는 기치를 걸었지만, 세계에 대해서는 ‘세계의 복음화’라고만 했지 ‘세계와 세계대학의 복음화’라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즉, 세계복음화를 SFC가 직접적으로 감당하겠다는 비전을 가지진 못하였다.
2. 해외지부 비전트립 및 개척운동
둘째가, “해외지부 개척운동”이다. 즉, 못자리선교운동에서 한 단계 발전하여 선교동원운동을 국내에서 활발히 벌이고, 해외SFC를 건설하겠다는 전략의 변화이다. 선교사가 파송되지 않던 초창기로 따지면 “못자리선교운동” 자체도 엄청난 비전이지만 ‘세계 대학의 복음화’라는 과제는 SFC가 전문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선교운동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개혁주의 선교운동은 이 시대 강력한 개혁주의 운동인 SFC가 도전해 봄직한 과제로 각인된 것이다.
그래서 필리핀을 필두로 비전트립이 시행되고 곧 해외지부가 개척되었다. SFC에서 진행되어지고 있는 비전트립은 선교 관심자들을 위해 매년 겨울과 여름에 실시하는 필리핀, 중국, 일본, 인도, 태국,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 몽골, 네팔, 터어키의 비전트립과 중국 연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통일비전트립이 있다. 비전트립이 시행되는 것은 곧 해외지부가 개척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지부개척은 먼저 영어권 베이스캠프, 한국교회사와 관련된 나라 순으로 진행되었다. 아시아권에서 영어권 베이스캠프 선교훈련의 요지로 꼽을 수 있는 필리핀을 시작으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중국 연변, 한국교회사와 민족사와 관련된 북경, 상해, 일본, 몽골, 일로일로, 태국 등으로 확장되었다. 개척된 나라들에서는 운동원을 개척동원팀, 사역동원팀(SFC-ionary)으로 파송하여 6개월에서 1년을 머물르며 현지 사역을 돕게 하였다.
3. 전방위 세계복음화에 대한 도전
해외지부 사역이 오래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추방이라는 아픔을 당하게 되었는데, 2010년에 몽골에서 차상훈간사, 2013년에 북경에서 김동춘간사가 추방당하였다. 또한 지부에 한 명의 대표가 있던 시기를 지나 한 지부에 여러 간사가 사역하게 되면서 리더십에 대한 문제가 도출되었다. 게다가 디아스포라 사역을 하는 과정에서 한인교회 개척사역이 몇 지부에서 시작되어 SFC해외사역의 정체성과 방향성 논쟁이 일어났다. 또한 선교동원운동에서도 비전트립이 교회비전트립팀의 경제력과 맨파워에 밀려 지원자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원칙 없이 생겨난 나라들에 대한 정책적 과제를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넘치게 되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과 잇슈, 정책적 과제에 따라 SFC의 세계복음화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적인 변화가 요구되었고, 강령구현에 대한 도전과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안팎의 목소리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2013년 가을 SFC 각 지역 및 해외지부 대표들이 모여 정책리트릿을 개최하였는데, 그 중 SFC 세계복음화 사역에 대한 사명과 전략, 전술을 확정하였다.
사명 : “개혁주의 세계교회 건설과 세계의 복음화”
전략 : “현재의 선교사역과 함께 협력(교제)을 통한 선교사역을 확대하도록 한다.”
전술 : “현지 캠퍼스 사역, 한인 유학생 사역, 현지 교회건설사역, 동원 사역, 국내 유학생 사역”
✈ SFC 세계복음화를 위한 전방위 사역의 도전과 과제
1. 인력 풀을 총동원하여 세계복음화로
SFC 해외지부가 온 세계에 개척되면 좋겠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SFC는 뜻밖으로 온 세계에 인력 풀이 형성되어 있다. 세계에 수많은 운동원과 동문, SFC정신을 가진 선교사들이 흩어져 있다. 이들을 네트웍시켜야 한다. 그래서 SFC가 해외사역을 다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능한 KPM과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KPM으로 파송하되 SFC사역을 인정받는 방향으로 협력이 일어나야 한다.
또한 현지의 인적 자원을 총가동 하되 현지 선교사와의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많은 KPM 선교사들이 SFC강령을 그 나라 언어로 가르치고 운동원을 세우고 있다. 또한 많은 나라에 흩어져 있는 동문 선교사들이 SFC사역을 원하고 있다. 이제 현지선교사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을 협력간사로 이끌어 내어 해외지부를 효과적으로 늘려나가면서 세계개혁주의교회건설과 학원복음화의 강령을 실현해야 한다. 현재 중국과 태국, 필리핀에서 좋은 협력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중국의 수많은 지역들,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터어키, 호주, 러시아, 유럽, 남미, 북미 대륙에 있는 SFC출신 선교사들 중에서 협력간사를 세우고 세계복음화의 구체적 과제에 도전해 볼 때이다.
해외에는 현지 선교사 뿐만 아니라 수많은 운동원들이 유학생으로 흩어져 있고, 동문들이 사업을 하면서 ‘비저너리’로 흩어져 있다. 많은 동역자들이 디아스포라 한인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이들과의 협력사역을 통하여 강령구현운동을 폭넓게 펼쳐야 한다. 이제 온 세계 대학에 개혁주의 깃발을 휘날리게 하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때가 된 것이다.
2. 아시아권에서 온 대륙으로
먼저 현역과 동문, 간사와 교회 지도자들에게 도전과 각성이 일어나야 한다. 왜 미국인 코큰 SFC 수련회는 없는가? 왜 나이지리아 엪씨 맨들이 없는가? 사우디아리비아 엪씨 맨이 없는가? 요즘 한국교회의 기도운동이 해외에 수출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기도할 때 코리안스타일로 하자고 한다. 중국에도 한국처럼 ‘통씽다까오’(통성기도)라는 기도가 생겼다. 이처럼 우리 SFC도 수출해야 한다. 한국 개혁주의를 수출해야 한다. 영국 IVF가 한국으로 왔다. 미국 CCC가 한국으로 왔다. 한국 SFC는 거꾸로 미국으로 영국으로 가야 한다. 삼성과 현대도 가는데 왜 우리는 못 가는가? 이제 한국 SFC가, 한국개혁주의가 온 세계로 가야 한다.
인근 동북아시아, 중국, 일본, 몽골 등지에서 확장을 하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터어키, 유럽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아프리카, 북미, 남미로 나아가야 한다. 단계적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이어야 한다. 온 땅에서 SFC 운동원과 동문을 찾고, 협력사역자를 찾고 거기에 SFC 깃발을 세우고 그들 언어로 강령제창하는 그 날들을 꿈꾸고 도전해야 한다.
3. 국내 외국인 유학생 사역에의 도전
한국에 온 외국인 및 다문화가정은 150만에 이른다. 그중 중국인이 40-50만에 이르고, 유학생 수가 10만 명에 육박해 있다. 그 다음 일본인, 미국인, 베트남인 순서이다. 국내에서 유학중인 많은 외국인학생들은 학업을 마치고 귀국 후에 전문직에 종사할 인재들이며 복음을 수용한 이들 가운데 많은 학생들은 장차 자국 교회발전에 중요한 부분을 감당할 수 있는 일군들로 쓰임 받을 자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와 있는 유학생들 상당수가 선교사가 활동하기에 제약이 많은 나라에서 온 자들로, 그들 국가의 미래와 발전에 초석이 될 인재들이 국내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복음만이 이 시대의 소망임을 인식한 우리는 주님이 열어 놓으신 이 시대에 열려져 있는 외국인 유학생 선교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 유학생이 바로 자국에 돌아갈 ‘사람을 낚는 어부’란 말이다.
SFC는 늦었지만 해외 유학생 사역에 참여하여 제1회 외국인유학생수련회, 제2회 외국인유학생수련회를 개최하였다. 주로 중국인들이었지만 1회때는 30여명, 2회때는 60여명이 참가하였다. 그리고 4회에 걸쳐 실시된 국제리더십컨퍼런스를 이제 제주도에 고정하여 한 해는 유학생대회로 한해는 해외지부 현지SFC대회로 실시할 계획이다. 제주도에는 전략적으로 국제훈련센타를 세우려고 한다.
나아가서 날로 증가하고 있는 국내 외국인유학생 선교사역에 전문 사역자를 선발하려고 한다. 우선 전국 주요지역(서울,부산,대구,전라,울산,경남,충청)에 영어나 중국어가 되는 간사나 협력간사(동문 및 도우미 포함)을 각각 한 명 씩 임명하여 소그룹을 형성케 하고 지역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 사역이 지속되도록 2013년 세워진 “외국인유학생부”를 더욱 활성화하여 재정적인 지원과 사역자들의 발굴, 교육, 케어, 관리를 하려고 한다.
나오며…
한국을 다녀간 펄벅 여사는 중국은 “대지”라고 했지만, 한국은 “살아있는 갈대”라는 글을 썼다. 그만큼 한국역사가 위태위태한 가운데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펄벅은 한국에 오면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파란 하늘을 그리고 싶고, 한국 젊은이의 눈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불꽃처럼 타는 눈, 이글거리는 눈, 비전과 목표의식으로 충만한 눈, 아마 그때 펄벅 여사는 엪씨 운동원의 눈을 본 것 같다. SFC운동원의 눈은 타올라야 한다. 복음이 필요한 곳을 분별하며 타올라야 한다. SFC는 이 시대에 복음을 품은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열방을 향해 복음의 통로,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 시대에 제사장들은 성전의 꼭대기에 서서 태양으로부터 처음 햇빛이 쏟아질 때를 지켜보고 있다가 문 여는 시간을 결정해 주었다고 한다. 타이밍을 알려주는 파수꾼 역할을 하였다. SFC가 바로 교회가 열방으로 가도록 하는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 한국 SFC는 세계 본부이다. 전국정기대회가 아니라 세계정기대회가 열려야 한다. 각 지역 대표가 아니라 각 나라 대표가 참석해야 한다. 대학생대회는 국내에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세계대학생대회를 열어야 한다. 앞으로 온 땅에서 깃발 들고 모이는 세계대학생대회가 되기를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