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사 금번 제25회 동기수양회 준비 과정에서 제작에 송상석 목사, 감독에 민영완 목사, 연출에 김남식 대회장, 배우에 강사님들, 기획에 이재현 총무, 관객에 운동원으로 구분할 수 않있겠소?"
"고것참 영화 제작 같구마 정말 수양회는 영화 제작보다 어렵고 총회 2-4회 하는 것 보다 더 어렵지 않겠나?"
이렇게 경상도 두 머슴아들이 잠시 찹쌀떡으로 요기하고 ㅌ럼 뒤에서 거사를 치루고 이재광 선생의 전송을 받으면서 1967년 12월 27일 오후 2시 30분 점촌행 급행 버스에 몸을 담고있던 것이다. 도중에 낙동강에서 버스채로 배에 실려서 강을 건너면서도 점촌에 도착하니 어느덧 날이 어두워서 우리들의 말초 신경을 조금씩 자극시키는 걸 무릅쓰고 교회를 무난히 찾았다. 점촌서 첫날 저녁 식사를 하는데 무려 "2-3분 내로 처리해라." 카는데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먹는 식으로 뜨거운 것도 잊고 막집어 넣었던 것이다. 여기서 순회 첫 집회에 30여명의 교인과 학생들이 모였었고 마친 후 음식을 가져와서 처리해달라 하길래 '위가 고통 당하겠구나.' 생각하면서 조심 조심 삭혔던 것이다. 그날은 점촌 황 장로님댁에서 너무 과분한 대접을 받아 송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 다음날 새벽기도회도 인도하고 아침 10시 5분에 영주행 버스를 타고 떠나는데 김모 과거 부위원장께서 직접 쑈 비슷한 걸 벌려서 또 한바탕 재미있게 웃으면서 영주에 11시 55분에 도착하여 혹한을 무릅쓰고 무난히 영주읍교회를 찾았을 땐 목사님도 노회에 가시고 계시질 않아 학생신앙운동 간부와 지도위원 집사님께 잘 여쭙고 기차로 안동으로 발길을 돌려 오후 3시 40분 경에 도착해서 교회를 찾아 갈려고 하는데 몇 학생들이 마중나와서 우리들이 달고 있는 SFC 배지를 우리들이 순회 온 직자들이란걸 알았던지 엷은 미소공작으로 우리들에게 접근을 시도하면서 우리들을 교회로 안내했던 것이다. 여기서 오후 7시 30분부터 순회집회를 드린 후 간단한 다과를 나누면서 수양회를 위한 토의도 하고 또 재미있는 환담도 했었는데 여기 학생들이 어찌나 잘 웃는지 배꼽이 탈날까봐 꽤나 걱정을 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그 다음날은 동장군이 화를 냈는지 몹씨 추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순회를 왔으니 새벽기도회까지 인도한 후 아침에 세수하고 들어온 김조사 머리에는 갑짜기 흰 머리와 고드름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열대 지방에서 자라난 김조사 깜짝 놀라 말도 못하고 서서있던 모습 정말 나혼자 보기에는 너무아 아까워서 .... 여기서도 시간에 메이는 몸들이라 조금 더 학생들과 이야기도 하고 싶었으나 어쨋던 떠나야할 몸들 그렇게 지체할 수 없어 남문교회 학생들의 정성어린 환송을 받으면서 오전 11시 40분 기차로 다음 예정지로 떠났던 것이다.
처음에 경주까지 갈려고 했던데 뜻대로 되지 않아 영천까지 가서 포항을 안가서야 되겠냐 하면서 많은 시간을 들여 포항행 버스에 몸을 실었더니 포항에 오후 3시 30분 경에 도착하여 대흥교회를 찾았을 때 조그마한 교회당 내에 첫눈에 들어오는 것이 우리 SFC 수양회 포스터였다. 우리들은 마음 속으로 많은 학생들의 환영보다도 더욱더 반가왔던것이다. 여기서 교역자님이 심방가시고 계시질 않아 교회 집사님과 사모님께 SFC에 대해 여쭙고 또 나그네길을 내 디디었던 것이다. 완행버스 엔진 덮게 위에 앉아 그런대로 재미나게 경주에 도착하니 땅거미가 차츰 기여들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저녁 7시 30분 경부터 수양회 순회 좌담회를 마련했다. 과거 23회 때 수양회를 한번 겪은 교회라 수양회에 대해서 상당히 고무적으로 나와있다. 이 날도 유 목사님 사택에서 뜨네기들은 잠자리를 벌였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8시 58분 기차로 울산으로 향하였다. 이날은 수양회 순회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긴장도 풀리고 약간씩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은 것 같았으나 참으며 지내는 동안 울산에 도착하여 울산교회를 찾으니 아담하게 잘 단장된 큰 건물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목사님댁을 방문했더니 토요일이라 내일 마지막 주일 설교준비에 분주하였다. 일찍 우리들이 간다는 걸 학생들에게 알리셨고 만반의 준비를 다해 놓았던 것이다. 여기서 잠시 시간이 있어 이발소에 가서 면도를 하고 나니 조금 전 산도둑같이 흉하던 몰골은 달아나고 아주 멋들어진 신사로 변했음을 고이 간직하면서 교회에 오니 덕하에서 까지 와서 모여있었다.
너무 모습이 말씀해서 그랬던지 여기가 순회 첫 코스입니까? 라고 들을 지경이었으니.... 좌우지간 간단한 순회집회를 가진 후 약간의 다과로 수양회 위해 간담회로 토의했던 것이다. 여기서도 숭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미련이 남지만 떠나야 했던 것이었다. 오후 5시 13분 기차로 영천에 도착하여 한시간 정도 기다리면서 역구내 가끼 우동을 먹으면서 또 쑈 비슷한 걸 부려 배꼼을 움켜쥐기에 급했었다. 여기서 대구행 기차를 타고 대구에 도착하니 이젠 네온사인 불빛도 가물가물하게 꺼질려고 했던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순회기간 중 너무나 과분한 대접을 받고 너무나 많은 폐를 끼쳐서 상으로 감사와 아울러 사과 드립니다. // 변상길 (대구 서문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