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령은 학생신앙운동의 출발과 함께 학생신앙운동의 본질을 규정하는 선언문의 성격을 띄며 고 박윤선 목사님과 한명동 목사님이 초안한 것이다. 강령의 의의는 한국 교회의 초기 부흥기의 영적인 지도력을 학생신앙운동이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학생신앙운동이 학국 교회사의 맥을 이어오는 운동임을 의미한다.
1.강령은 SFC 운동원의 동질성을 규정하는 헌장이다.
SFC 운동원이란 강령에 동의하는 사람이다. 즉, 강령에 나타난 목적과 사명의식을 가진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SFC를 통해 하고자 하시는 일에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을 말한다. 현실적으로는 강령에 대한 분명한 이해나 동의가 없이도 SFC 운동원으로 불리우기도 하고, 스스로 SFC 운동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SFC가 운동을 위한 집단임을 명칭에서부터 명백히 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강령에 동의하지 않는 이를 SFC 운동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긴다.
2. 강령은 크게 4부분으로 나누어 진다.
강령은 크게 4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신조와 목적과 사명과 생활원리가 그것이다. 신조는 운동의 정체성을, 목적은 운동이 지향하는 바를, 사명은 목적 수행을 위해 운동이 부름받은 사역의 장을, 생활원리는 구체적인 사명 수행을 위한 멤버들의 삶의 자세를 드러낸다.
1) 신조
우리는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교리문답을 우리의 신조로 한다.
강령의 1항이 신조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SFC 운동이 신앙고백 공동체임을 천명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수의 운동이 도대체 어떤 기초에서 출발한 운동인지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운동인데 반해 우리는 분명한 신조를 가진 운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분별한 통합을 원치 않는다. 동참과 협력은 경우에 따라 가능하지만 우리의 동지요 동역자는 오직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이다.
교단이나 교파의 어떤 운동을 막론하고 그들이 어떠한 신조(신앙고백)를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 신조 속에 성경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어떤 부분은 하나님 말씀이며 어떤 부분은 아니라고 믿을 것인가? 성경을 다 믿을 것인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삼위일체를 인정하는가?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인 것을 믿는가? 구원은 예수님만을 통해서만 받게 된다는 사실을 믿는가? 하는 등의 중요한 고백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SFC가 받아들이는 신조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인데 이 고백서는 1643년 7월 1일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만들어졌다. 이 회의는 5년 6개월 22일 동안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3국이 주최하여 교리, 교회정치, 예배모범 등을 확정하고자 모인 집회였다. 이 회의의 참석자는 151명으로 목사가 121명, 하원 의원이 20명, 나머지는 귀족이었다. 총회의 횟수는 1,064회로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진행된 신중한 회의였다. 이 결과로 얻어진 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교리문답, 예배모범 등이다. 이 회의에 하나님의 크신 손길이 임했다는 사실은 300년이 지나오면서도 교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2) SFC의 목적
우리는 개혁주의 신앙과 생활을 확립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됨을 우리의 목적으로 한다.
첫째, SFC는 인간 개혁을 1차적인 목적으로 한다.
SFC 강령 1조는 우리는 개혁주의 신앙과 생활을 확립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있다. 우리는 이 세상이 빛을 필요료 하는 어두운 곳이며, 소금을 필요로 하는 부패한 곳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신조와 교리문답에도 인간의 전적인 부패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처럼 철저히 부패한 인간을 복음으로 거듭나게 하고, 새 사람되게 하는 것이 그 목표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믿고 "회개정신" 그 목표로 한다.
둘째, SFC는 "교회개혁"을 그 목표로 한다.
SFC 강령 제 3조 "개혁주의 신앙의 교회건설을 그 사명으로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는 개혁되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 땅 위에서는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 이외에 절대적인 것이 없다. 교회도 절대적이지 못하는 것이 우리와 천주교와의 중대한 차이다. 땅 위의 교회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 SFC는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런 교회 건설을 목표로 한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힘서야 한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는 그런 개혁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개혁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꾸준히 훈련받아야 하고, 우리의 생활 원리로 열심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셋째, SFC는 "세계개혁"을 그 목표로 한다.
이상과 같은 목표의식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SFC 운동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SFC 운동원이라면 이러한 의식을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이 SFC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귀한 뜻들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잘 실현되기를 바란다.
3) SFC의 사명
우리의 사명은 다음과 같다.
- 개혁주의 신앙의 대한교회 건설과 국가와 학원의 복음화
- 개혁주의 신앙의 새계교회 건설과 세계의 복음화
SFC의 목적은 사명 수행의 결과로 이루어질 것이다. 복음이 전파되면 인간이 새롭게 되고 세계가 새롭게 된다고 믿는다. 개혁주의 신앙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가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다. 그래서 기독교 문화에 관심을 가지며,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확립해 가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변혁이 복음화란 말 속에 담겨 있는 뜻이다.
4) SFC의 생활원리
우리의 생활원리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 중심 2. 성경 중심 3. 교회 중심
올바른 신학과 신앙 그리고 삶이 요구되어지는 혼탁한 때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바른 삶의 가치관을 상실한채 우왕좌왕 하고 있다. 어떤 싱앙과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SFC 강령에 명시된 생활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숙지할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신앙을 견지하고 있다고 자랑하더라도 옳은 행실이 나타나지 아니하면 그 신앙은 잘못된 것이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느니라." 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것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고, 철저하게 우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표준해서 살아야 한다. 모든 삶의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분의 통치를 받는 것이 하나님 중심의 삶이다. 아브라함 카이퍼 박사는 말하기를 "칼빈주의자는 모든 현상 속에서 하나님의 손을 보며, 모든 현상 배후에서 하나님을 손을 보며, 기도하는 태도로서 자기 전 생애의 태도로 삼으며, 구원 문제에 있어서 자아 의존의 전부는 배제하고 하나님의 은혜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이다."고 하였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을 잘 모르고서야 어떻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수 있겠는가?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은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그지 없이 중요하다. 국어도 모르고 한국에 대해서 문외한인 월남 난민을 서울 명동으로 데리고 가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혼자서 살라 한다면 그것은 그에게 잔인한 일일 것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소유요, 그가 통치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에 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살려 한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잔인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
* 성경 중심
우리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신 성경을 유일한 법칙과 생활의 규범으로 삼는다. 우리는 기록된 성경 밖에 넘어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 중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경의 대한 바른 신앙고백이 전제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한다.
(1)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1장 2항의 첫머리에서 가르친 것이다.
(2) 성경이 옛 선지와 사도의 시대에 적용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일 뿐 아니라 후대 사람 특히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진리인 줄 믿는다. 성경에도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한 것이다.' (롬 15:4)고 하였다.
(3) 우리는 성경 원본, 즉 선지자와 사도들의 기록이 그릇됨이 없음을 믿는다. 원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성경 기록자인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조금도 실수함이 없도록 감동하셨다(딤후 3:16).
(4) 우리는 성경이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모든 일들과 이치들에 있어서 유일무이한 절대 심판인 것을 믿는다. 인간의 주관적, 객관적 진리보다 성경의 주장과 권위를 더 앞세운다. 쯔빙글리는 "하나님의 말씀 밖에 신뢰하는 것은 유사종교요, 하나님의 말씀에만 의존하는 것이 진정한 종교다." 고 했다.
그러므로 성경중심의 삶이라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을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것은 우리도 침묵한다. 성경이 진행할 때 우리의 사색도 진행하며, 성경이 멈출 때 우리의 모든 것도 멈추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슴을 생활의 원리로 삼아야 하고, 신앙의 법칙과 실생활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와 같은 삶을 배우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 교회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이라고 할 때 교회의 건물(church building)이나 교회 조직(church organization)보다는 그리스도의 몸(the body of church), 하나님의 백성(the people of God) 또는 계약의 백성(the covenant people)이라는 개념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우리는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하나의 거룩한 공교회(A Holy Catholic Church)"를 믿으며,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 거룩한 공교회는 복음이라는 본질적 요소를 담고 전파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되어야만 하며, 만인에게는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이, 또 선택받은 백성에게는 효과적인 예배의 기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구원 역사를 교회 운동을 통하여 전개해 오셨다. 족장 시대를 거쳐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성된 구속사역을 신성한 교회 운동을 통해서 이룩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이런 의미에서 개혁주의는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벗다는 성경적 진리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 중심이라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1)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요, 모든 권위를 행사하심을 믿는다.
(2) 그리스도는 말씀을 방편으로 교회의 권위를 행사하심을 믿는다.
(3) 왕으로서 그리스도는 교회에 권세를 주심을 믿는다.
(4) 진정한 말씀의 전파, 정당한 성례의 집행, 진실한 권징의 실행이 주께서 세운 교회 제도를 통하여 이룩하여 감을 믿는다.
(5) 교회는 우리 신앙과 생활 연단의 제 1차적인 장소이다. 교회를 통한 신앙생명의 내적 성장의 결과 학원과 국가와 복음화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난, 교회와 상관하지 않는 신앙운동은 배격한다.
자기 개혁 -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
교회 개혁 - 국가, 학원, 세계의 복음화, 개혁주의 신앙의 교회 건설
사회 개혁 - 세상의 빛과 소금
하나님 중심의 삶은 우리의 궁극적 목표요, 성경 중심의 삶은 우리 신앙의 표준이요, 교회 중심의 삶은 우리의 삶의 비전임을 인식하고 사는 운동원일 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나타나게 되고 국가와 학원과 세계의 복음화를 이룩하는 기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