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합니다! SFC/SFC 역사

기독학생운동사

노랑 테니스 공 2024. 1. 5. 14:38

김동춘

1. 기독학생운동의 의의

대학은 전통과 예지가 빛을 발하고 낭만과 정열이 넘쳐흐르는 곳이다. 정의와 진리가 순수한 몸짓으로 나가는 길이며, 그 길을 밝히려고 숱한 시대의 양심들이 피와 땀을 흘린 곳이다. 불의와 타협을 거부하는 뜨거운 외침들이 살아 숨 쉬던 곳이다. 이러한 대학에서의 학생운동은 우리 사회의 다른 여타 집단이 감당할 수 없었던 현실 개혁운동을 주도적으로 자극하고 추진해 독립적인 계층적 목소리를 인정받을 만큼 성장했다. 학생운동은 역사의 전환기에서 시대가 어려울 때 마다 현실에 고착화하지 않고 선각자적인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또 다른 면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학생운동의 이면에 자리 잡고 영향을 미친 것은 기독학생운동이었다. 기독학생들은 학원과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증거하고 신앙과 학문을 통한 자기 결단과 역사의식을 체득하고, 정치,경제,사회적 정의의 실현을 위해 활발히 운동해 오기도 했다. 기독학생운동은 장차 이데올로기의 몰락과 함께 퇴색해 가는 학생운동을 계속적으로 선도하고 주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기대가 된다. 아울러 한국교회사적으로도 기독학생운동의 역할과 기대는 매우 크다. 분열과 탈역사적인 모습을 견지한 현재의 한국교회에 대한 갱신과 개혁, 연합은 기독학생들로부터 시작할 수가 있고, 기독학생운동은 청년,장년운동으로 나아가 한국 기독교 전체의 운동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2. 간단히 살펴본 기독학생운동사

1) 세계기독학생운동은 수도원운동, 종교개혁운동, 선교운동(영국의 케임브리지세븐, 미국의 헤이스텍기도회)을 통한 기독학생들이 집결한 헐몬산수련회 이후 SVM운동으로 자리잡고 이것은 1900년대에 YMCA운동으로 연결된다.(하지만 YMCA운동은 사회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1920년대에 사회주의 진입 이후 좌경화의 모습을 갖추면서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과 다른 진로를 걷게 된다)

2) 일제시대의 기독학생운동은 일반 학생운동과 뚜렷한 구분점을 가지지 못하고 전개되었다. 그것은 기독교를 통해 학생운동이 소개되고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제시대는 기독학생운동이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이때의 기독학생운동은 해외선교단체의 유입과 교단분열이 없었으므로 단일 양상을 보였다.

한국의 학생운동은 1896년 독립협회의 운동과 함께 일어났던 한국 최초의 학생 조직인 배재 학당의 협성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01년에 기독학생회의 모임이 조직되었는데 배재학당의 기독학생회(또는 학숙청년회)로서 학생YMCA운동의 효시이다. 1903.10.28일의 황성기독교청년회(일반YMCA)는 한국 기독학생운동의 원조이다.

1920년부터 사회주의 계열이 점차 학생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1920년 정동예배당에서 1,000여명의 학생들이 조선학생대회를 개최하고, 1923년 조선학생회의 창립총회, 1924년 조선총학생연합회가 발족되었다. 1926년 6.10만세운동,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있었다. 이때 사회주의계열의 학생운동이 왕성하였다.

각 교단 청년회의 활동이 이 때에 왕성하였는데, 감리교 엡윗청년회 · 성결교 성우청년회 · 장로교에선 CE운동이 있었다. 이 시대 기독청년들은 두 이데올르기 사이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1938년 장로교의 공식결의로 행한 신사참배는 후일 기독교 분열의 도화선이 되었다.

3) 해방 후 3공화국까지의 기독학생운동은 1948년과 1974년이 중요한 해이다. 1949년 진보주의 기독학생연합회가 결성되면서, 개혁주의 기독학생운동이 결성되면서 기독학생운동의 양 계보를 형성한 것과 1974년 진보주의적인 기독학생운동이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고 거꾸로 학원선교단체가 폭발적인 부흥을 하면서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이 등장하였다.

1948년 4월 25일 ‘대한기독학생회 전국연합회(KSCF)’ 결성되었고, 1957년에는 ‘한국기독학생운동(KSCM)’이 탄생되었다. 이들은 1960.4.19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1948년 8월 2일 학생신앙운동(SFC)이 부산에서 태동하였다. 그러나 학생신앙운동이 일찍부터 캠퍼스에 눈을 돌려더라면 캠퍼스의 기독학생운동은 진보주의와 개혁주의로 양분되면서 지금까지 캠퍼스 기독학생운동을 주도하였을 것이다.

한국기독학생운동의 분기점은 1974년이다. 진보주의 기독학생운동은 ‘한국 기독학생 총연맹(KSCF)’(1969년 조직)이 주도한 시국운동이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지하로 숨어들고,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은 부흥기를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1974년 8월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엑스폴로74-기독교세계복음화대회」를 기점으로 CCC, Navigator, UBF 등의 교회병행운동(Para-Church Movement)이 부흥기를 맞게 된다. 이들은 타문화권 선교에로의 파송, 일대일 복음전도, 제자훈련, 경건훈련(Q.T), 찬양을 통한 예배의 갱신, 소그룹 성경공부 등으로 기성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4) 1980년대 5공화국이후 진보주의 기독학생운동은 정체성을 가진 기독학생운동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다. (IT파와 비IT파 논쟁이 있었지만 비IT파가 주도권을 잡게 된다)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은 광주항쟁 이후 서서히 역사참여적인 모습이 드러나면서, 중도적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이 부상하였다.(IVF, ESF, SFC) 1991년 CCC에 밀어닥친 김준곤 총재에 대한 간사회(비상대책위원회)의 집단 항명 및 개혁을 위한 진통 사건으로 50여명의 간사들이 집단으로 사임하여 DFC(제자들 선교회)를 창립하는 등의 예를 보건대 보수주의 복음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목소리와 함께 중도적 복음주의가 부흥한다.(IVF는 기독교세계관운동, 기독교문화에 대한 관심 등이 당시 시대적 콘텐츠와 부함되어 큰 부흥을 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 6공화국에 들어서면서 진보적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이 부각되었다. 1986년 서울대 오월제 동안 예수대행진 이후 복음주의 진영에서의 진보적 학생들이 주축하여 ‘기독교문화연구회’(기문연)을 결성하였다. 이후 87년 「복협」(공정선거 감시와 민주정부수립을 위한 ‘복음주의 청년,학생 협의회’)- 88년 3월 1일 ‘복음주의 청년연합회’(약칭,복청)- 91년 3월 「복청학련」으로 발전한다.

1991년 IVF는 1991.5.6. 사회선교를 위한 「복청학련」의 ‘故강경대군 추모와 폭력 정권 회개 촉구를 위한 시국연합기도회’의 메세지 증거를 빌미삼아 당시 총무가 이사회로부터 해임되고 일부 간사진이 재편되었다. 이에 6개 대학 지부가 반발 IVF에서 탈퇴하여 ‘한국기독청년연합회’(한기연)를 창립하는 등 중도적 복음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진보적 복음주의를 탄생하게 한 것이다.

5)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독학생운동은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 주었다. 진보주의 기독학생운동의 복음주의적 영성에로의 접근, 복음주의 내에서의 역사참여에 대한 다양한 변화 모색이 그것인데, 이러한 변화는 진보와 보수를 합일하는 새로운 기독학생운동을 요청하였다.

  • 대학 기독학생연합회의 결성과 지역 기독학생총연합회의 결성
  • 1991년 3월 「복음과 상황」 창간
  • 학원복음화 연합 운동인 학복협(학원복음화협의회) 결성.(1990)
  • 해외선교를 위한 연합운동인 선교한국 (88, 실제적 90년부터 시작)
    1990년대의 다양한 연합모임의 결성은 무차별, 무지향적이 아니라 80년대 광주항쟁으로 대표되는 민족의 혼란을 거치면서 선교단체의 한계상황 인식 속에서 교회개혁의 필요성 속에, 공동체 부문운동의 필요성 속에서 일정한 목표성을 가지고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100년의 개신교 역사 아니, 한국 민족사를 향하는 하나님의 의도 아래서, 하나님나라의 현재성과 총체적 복음의 시대적 실천이라는 과제 속에서 되어진 하나님의 섭리이다.

6) 기독학생운동사를 살펴보면 세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 학생운동의 출발점은 기독학생운동이었다.
   둘째, 기독학생운동은 교회를 변화시켜고 개혁시키는 운동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셋째, 기독학생운동은 개혁주의 기독학생운동이 그 대안으로 확인된다는 것이다.

3. 기독학생운동의 반성

1)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은 다음의 3가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1) 복음적 영성을 붙잡으면서 기독교 세계관적 삶의 구현, 구조 악에 대한 실천적 영성을 잡으려는 진보적 복음주의 (복청학련, 기총련 등 사회선교 표방하는 학생들, SFC, IVF, ESF의 소수 학생들, 경실련 기청협, 기장 및 예장 통합측 학생들 다수, 예장 보수측, 감리교 계통 학생들 소수)

   (2) 학원 선교단체로 대표되며 다수의 일반 기독학생이 속하는 중도적 복음주의(SFC, IVF, ESF, DFC, JOY 다수, CCC 일부 학생, 예장 및 감리교 계통의 학생들 다수)

   (3) 학원 선교단체와 교단 학생 중에서의 보수적인 복음주의 (CCC, YWAM, ,Navigator, 한사랑선교회, UBF와 오순절 계통의 CAM, 침례교 및 예장 보수측 교단의 학생들 다수)

2) 기독학생운동의 역사 속에서의 기능

기독학생운동이 역사적 흐름과 역사 속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 특히 기독학생운동에서 두 양상으로 구별되는 복음주의와 진보주의적 기독학생운동은 각각 어떤 기능을 가졌을까?

그런데 두 양상의 기독학생운동 모두 과거와 현실 모습에서 부정적인 모습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복음주의 기독학생들의 다수를 점하는 대학의 선교단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독특한 부름을 받은 교회병행운동(Para-Church Movement)으로서 복음화와 제자화,선교적 사명을 잘 감당하였지만, 역사 현실속에서는 피안적이고 도피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 반해 진보주의 기독학생들은 역사의 현실과 상황은 잘 파악했지만 사회운동 일변도로 나가버려 하나님 나라의 구별된 백성으로 당연히 가져야하는 기독성이라는 정체성(Identity)을 소홀히 하여 하나님 나라의 초월성과 기독인이 기본적으로 거쳐야 하는 복음적 영성 즉, 십자가의 내면성과 개인성을 져버렸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복음적 영성, 기독성을 가지면서도 복음의 총체성에 따른 현실 참여적 모습을 견지하는 기독학생운동이 요청된다. 즉, 진보주의와 복음주의를 통괄하는, 기독성을 바탕으로 현실참여적인 모습을 견지하는 기독학생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4. 21세기형 기독학생운동의 모델

1) 20세기를 지나면서 한국기독교는 진보적 기독교운동의 약화와 반성, 보수적 기독교운동의 반성과 자각에 힙입어 새로운 모습을 요청하였다. WCC와 로잔언약 사이의 상호접근이라는 세계교회의 경향과도 맥을 잇는데,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의 조화, 성령운동의 개인성과 사회성, 예언자적 사명과 제사장적 사명의 통일, 민중신학적 편파성과 개혁신학적 3보편성의 새로운 접근, 그리고 기독교의 급진적 이상과 온건한 실천의 중도적 운동성 등의 강조이다.

2) 21세기를 안아갈 새로운 기독학생운동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필요로 한다.
   첫째, 복음적 영성에 바탕두면서 현실상황에 대한 실천적 삶의 모색을 하는 운동과 운동론.
   둘째, 기독학생들에게 복음적 영성과 현실 상황에 실천적 삶을 제공하는 신학.
   셋째, 교회로부터의 지지 확산과 연합 운동.
            (이러한 기독학생운동의 과제는 개혁주의 기독학생운동의 활약을 강력히 요청한다.)

3) 소련 연방 및 동구권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대학가에서도 이념적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고, 따라서 학생운동 자체도 구심력을 갖지 못하고 난립화 현상, 혹은 대안 부재 현상이 나타났다. 더 이상 일반 학생 운동이 대학 사회를 주도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럴 때에 입체적이고 대중적인 학생운동이 나와야 한다. 결국 그것은 누가 할 수 있을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전 인격, 세계관적 변환을 입고 참된 복음의 생명력을 나타낼 수 있는 기독학생들, 성령이 주시는 지혜에 충만한 기독학생운동의 몫이다. 복음이 얼마나 힘차고 강한 운동력을 가졌는지 이제 펼쳐 보일 때가 되었다. 순수함과 창조성을 가진 기독학생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헌신으로 끊임없이 복음을 통해 자기 갱신을 하면서 나갈 때 민족과 교회의 현실 앞에서 운동체로 우뚝 설 수 있으며, 이것은 21세기 한국 기독교 나아가서는 세계 기독교의 소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