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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SFC의 반동성애 활동 [교회건설 13호, 1996년]

노랑 테니스 공 2023. 12. 6. 16:11

우병훈 운동원(서울대 94)

1. 동성애 운동의 전개

95년 늦가을(11월), 서울대 중앙도서관 옆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보를 보고 있었다. 자보가 인기가 있는 때는 가끔씩 있었던 일이지만, 그 자보만큼 인기가 있었던 것은 필자의 기억으로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그 자보는 ‘마음 001’- 여기서 001은 한국 사회의 인권의 정도를 나타내는 수라고 한다 - 이라는 동성애자 모임에서 붙인 것으로, 동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 당한 피해들을 적어놓고서는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을 버리고, 동성애자들의 인권 보호를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자보 옆에 붙인 의견란에는 동성애에 대한 뜨거운 찬반 논쟁이 시작되었고, 그 자보 내용은 많은 서울대인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의견란에 적힌 찬반 논쟁에는 적극 지지를 하는 쪽과 적극 반대를 하는 쪽, 좀 더 두고 봐야겠다는 쪽 등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는데, 적극 반대를 하는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적어 놓거나, 자연의 순리나 절대자의 뜻에 어긋난다는 등의 내용을 적은 것으로 보아 대부분 기독인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자보가 떼어진 후 곧바로 '국제 사회주의자들(International Socialist)'이라고 스스로를 밝힌 자보가 붙었는데, 그 내용은 "마음 001’의 활동을 적극 지지한다는 것과 자본을 휘어잡은 권력의 동성애자들에 대한 탄압은 분쇄되어야 하며 또한 동성애는 역사적으로 사례가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서 비정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자보는 워낙 논리적으로 모순이 많아서 학생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긴 했지만,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들이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사실에서, 이미 동성애 운동(혹은 동성애자 인권 보호 운동)은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의 성적 탐닉을 정당화하려는 노력 그 이상의 무엇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그것은 학생 운동 세력의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2. 서울대 기독인들의 반응

모든 가치가 상대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문화에 젖어 살아가는 세대라서 그런지, 일반 학생들 중에 동성애가 싫다는 강력한 반대를 표명하고 공개적으로 의사표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찬성도 반대로 아닌 중간자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하나의 호기심거리로 생각하거나 하는 등 소극적인 태도에 그쳤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기독인들의 반응은 꽤나 적극적이었다. 서울대 SFC에서도, 이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적절한 대응이 필요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는 중에 IVF의 한 지체가 자보를 붙였다. 자보의 내용은 인간의 행동과 중심을 평가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은 하나님이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은 동성애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 동성애자들은 속히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자보는 동성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신경을 극도로 건드렸고, 기독인들 가운데서도 이 자보의 내용을 불만족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이에 서울대 SFC는 그 자보의 대응과 같은 입장을 취해서는 오히려 기독인들과 동성애 운동가들 사이에 대립 관계만 조성할 따름이고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면 다른 학우들에게도 좋지 않는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을 생각하여, 좀 더 신중한 대응과 전략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한편 서울대 기독인 연합(이하 ‘서기연’으로 약칭)에서도 동성애 운동에 대응하는 기독인들의 입장이 이렇게 분열적이고 산발적이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하고 정기 대의원 대회 때 이 안건을 논의했는데, 이 때 SFC의 입장이 많이 반영되었다. 그 회의에서 반동성애 운동을 할 모임이 구성되었는데, 구성원은 IVF의 지체 2명(자보를 쓴 사람 포함), SFC의 지체 2명, SCA의 지체 1명(서기연 위원장)으로, 모두 동성애 운동에 대해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 오던 사람들이었다.

3. 반동성애 운동의 대응

반동성애 운동은 일단 운동의 방향을 정하였다. SFC와 SCA의 지체는 IVF의 지체가 붙인 자보와 같은 대응(기독교적인 입장을 아무런 여과 과정 없이 제시하는 것)은, 기독인들 모두가 대화할 여지도 없이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것으로 인식될 위험이 있어 그런 방식을 취하다가는 내용에 상관 없이 전혀 우리의 생각이 전달되지 않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고, 이 의견이 받아들여져 그런 식의 대응은 지양하기로 했다. 그래서, 운동의 방향을, 처음에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이성에 호소하여 동성애 운동가들의 주장이 별로 설득력이 없음을 보여 주는데서 시작하여, 결국 이성의 판단으로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상황까지 논쟁이 이르게 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는 것을,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성(性)은 이런 것이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하게 되었다
.
운동의 목적도 정하였는데, IVF 지체는 동성애자들을 전도하는 것을 제시했다. 반면 SFC와 SCA 지체는 궁극적으로 동성애 운동가들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는 것을 바라지만 처음부터 복음을 제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보았고, 또 지금 서울대에서 더 필요한 운동은 동성애 운동가들을 향한 것이라기 보다는 일반 학우들을 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일반 학우들은 동성애가 싫더라도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동성애는 암암리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잘못 이해될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두 의견은 절충되었다. 전자의 의견은 간사님들이나 지도 목사님들이 동성애자들과 개인적 접촉을 통해 전도하는 것으로, 후자의 의견은 일반 학우들의 의식을 전환하기 위해 자보를 쓰고 기독 학우들을 위해 자료집을 발간하는 것으로 반영되었다.

4. 반동성애 운동의 전개

이미 몇 번 언급하였지만, 반동성애 운동을 하는 다섯 명의 지체들 사이에서도 많은 의견대립이 있었고, 그 중 신학적인 의견차이는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활동은 점차 시간이 지연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방학이 점차 다가오는 시점에서 시간을 끌수록 우리가 처음에 의도했던 목적은 달성하기 어려워질 것이기에 다섯 명의 지체들은 최선을 다하여 운동에 박차를 가해 결국 자보를 완성하게 되었다. 자보는 동성애 운동가들의 주장을 공격하고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악영향 및 성은 생식을 따로 떼서 생각할 수 없다는 등등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전략상 기독인 연합의 이름으로 붙이지 않고 여섯 명(후에 들어온 또 다른 IVF의 지체까지 포함하여)의 이름으로 붙였다. 그 동안 서기연에서는 서울대 기독동아리들에게 자료집을 배포하고 이를 위해 기도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전도접촉을 가지는 것은 여러 사정으로 하지 못했다.

자보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에 대한 학우들의 반응은 꽤나 긍정적이었던 것 같다. 물론, 동성애 운동을 찬동하는 쪽에서는 의견란에 강력한 반발을 표했고, 앞서 말했던 국제사회주의자들은 이 자보를 반박하는 또 다른 자보를 걸었다. 그러나, 그 자보는 사실상 우리 측이 붙인 자보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반박하지는 못했다. 그 후 총학생 회장 선거와 또 다른 이슈에 밀려 동성애라는 주제는 사람들 머리 속에서 점차 잊혀져 갔고, 학원가는 방학을 맞이 하게 되었다.

5. 그 이후 지금까지…

방학 때 비록 연합 활동은 아니었으나, 서울대 SFC에서는 반동성애 운동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 소모임이 생겨났고, 그 모임에서 동성애에 대한 책들을 읽고 서로 토론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동성애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를 했으나, 동성애 문제는 쉽게 취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순결 서약을 하는 것 외에 청소년을 위한 올바른 성교육이 부족하고 근본적으로 성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다시피한 한국 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며 우린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방학 기간과 그 이후, 동성애 운동은 다시 예전처럼 ‘핫-이슈’로 떠오르지는 않았으나 영화 상영, 토론회 개최 등의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마음 001’이라는 이름도 ‘마음 003’으로 개칭하여 계속 활동 중이긴 하나 별로 활발하지는 못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