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합니다! SFC/강령과 주장

성명서 (환원 선언문, 1963년)

노랑 테니스 공 2023. 5. 4. 15:58

<제 21회 전국 SFC 하기수양회를 연기하면서>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 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이사야 56:10-11)"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함으로(사사기 17:6)"

"나와 너가" 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침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 볼 길이 요원하다. 차라리 벙어리가 되었던들 말하지 아니할 것을! 차라리 소경이 되었던들 보지나 않았을 것을! … 차라리 귀먹어리나 되었던들 듣지나 않았을 것을! …, 젊음의 "얼"들은 이렇게 통탄한다.

차라리 바벨론 강변이나 되었던들 울어나 볼 것을! 차라리 아세라 목상 앞에 섰더면 외쳐나 볼 것을! 차라리 넓은 길에 섰더면 군세나 맞추어 볼 것을! 이렇게 젊음의 "얼"들은 불안하여 본다. 차라리 과학자 앞에 섰더면 창조주의 신비나 발견했을 것을! 차라리 정치가 앞에 섰더면 하나님의 공의나 깨달을 것을! 차라리 예술가 앞에 섰더면 아름다운 창조주의 조화나 감지했을 것을! …

우리의 지도자가 성직자였다기에 실망하였다. 보수주의였다기에 더욱 환멸을 느꼈다.

 

여호와의 영광을 위한다기에 더 더욱 두려웠다. 이렇게 젊음의 "얼"들은 회의하여 본다.

전국에 계시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끓는 피와 함께 십자가 동맥에 얽히어 함께 호흡하는 신앙운동원들이여! 우리는 무겁고 아픈 가슴을 움켜쥐고 우리에게 주워진 거치른 역사의 사실 앞에서 떨고 있습니다. 어디에 서서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해야 될른지 못내 벅찬 가슴을 진정하기엔 힘이 듭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제자리 걸음을 원하지 않고 재축하였기에 제 21회 전국 SFC 하기 수양회는 "사정에 의하여 무기연기 된다."는 통지서를 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더우기 역사는 우리에게 사실을 사실로의 기록을 요구 하였기에 또 한번 붓을 들고 수많은 관중과 역사의 증인 앞에서 "사정에 의한 수양회 무기연기" 에 대한 진상의 일부를 성명하는 바이다.

1. 총회 산하에 단일 학생신앙운동 기관은 1960년 12월 13일 역사적인 제 45회 합동 총회(서울 승동교회)와 제 46회 총회(부산남교회)의 결의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일부 교회와 몇몇 목사님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총회와 노회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이 학생신앙운동(SFC)은 소위 고려파 운동이라고 하여 무관심과 비협조와 방인하는 상태에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는 중

2. 금번 제 21회 전국 학신 하기수양회에 즈음하여 부산XX교회 000목사는 1963년 6월 10일에 전국 SFC 위원을 공식으로 불러놓고 강사진에 따르는 갖가지의 변경 강요와 금번 수양회의 특색을 "정치적 색체를 띈 것으로 할 것" … 운운 등으로 하라는 기막힌 설유에 완전히 실망하였습니다.

3. 위의 가용에 대하여 우리는 가능한한 교회의 화평과 받을 은혜를 위하여 시간표를 작성하여 포스터와 통지문을 전국에 발송하고 박두하는 일자 앞에서 준비에 분망하던 중에 1963년 7월 10일 부산XX교회 000목사와 XXX XX교회 000목사들이 위원들을 공식으로 불러 놓고

 

1) 명예 대회장과 고려신학교 교수들은 수양회 강사에서 뺄 것과

2) 위원들을 앉혀 놓은 그 자리에서 자칭 목사님들끼리 자기네들을 그 시간을 분담하도록 하라는 것과

3) 이렇게 시간을 변경하지 않으면 우리들 교회에 소속한 학생 전원을 집회에 참석치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과

4) 이러한 일은 부산노회 교역자 회의에서도 대두되었다는 일종의 위협공세를 취하여 왔다는 사실입니다.

4. 위의 일은 우리에게 아래와 같은 점으로 도저히 이해가 불가하였습니다.

 

1) 합동총회가 SFC 총회 산하의 단일 기관으로 결의하여 놓고 왜 고려파 운동이라고 하는지?

2) 은혜 자리의 집회인 수양회를 왜 국회의사당이나 무슨 집회 강연회나 총회, 노회 자리와 같이 정치적 색채를 특색으로 하라고 하는지?

3) 고려신학교 교수들은 왜 강사진에서 제외하여야만 된다고 하는지? 그들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 소속한 목사가 아닌지?

4) 부산 노회원 된 목사가 학신 운동의 지도위원이나 아니면 특별한 사명을 띄지 않으면서 임의로 수양회 강사 채용에 변경 강요를 할 수 있는지?

5. 이제 우리는 아래와 같은 몇가지 점에 유의하여 금번 수양회를 "사정에 의하여 무기 연기한다" 는 통지서를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1) 합동 이후 다른 곳에서 모인 수양회 집회의 무관심, 비협조, 방임이상으로 금번 집회는 은혜면이나 경제면에 극심한 타격이 예상되는 점

2) 금번 학신 집회가 그 목적과 기능을 완전히 망각하고 일종의 정치적 무대화 됨으로 은혜 받으러 모여 드는 어린 심령들에게 우리가 받은 이상의 실망을 줄 것이 예상되는 점

3) 우리가 크게 존경하는 서울과 부산에 계시는 귀한 교수님들이 자유로운 학의 분위기나 은혜 분위기에서 마음껏 일하기에는 너무나 부자연스러움으로 앞으로의 보수주의 신앙운동 결합에 오히려 결여를 초래 하겠다는 염려 점

4) 차라리 한국교회에 우리가 요구하는 새로운 파숫군이 일어나서 모든 것에 구애를 받지 않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운동을 열망하는 욕망 등에서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신앙운동원들이여! 이것은 약자의 비굴에서 나오는 가냘픈 소리가 아닙니다.

언필칭 우리의 운동이 소위 고려파 복구 운동자들의 사촉을 받아 나온다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소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어버이에게, 학교에서 스승에게, 사회에서 선배에게 좋은 것이라면 받아들여 인격 요소의 완전을 채우는데 열망하는 하나의 지극히 적은 학생들입니다. 더우기 십자가 구속과 운명을 함께하는 신앙학도 입니다. 오직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헛된 재물과 분향과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와 모이는 행사가 가증하고 악하여 오히려 그것이 여호와께 견디지 못하는 무서운 짐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사야의 외침에서 듣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정치보다도 보수 운동의 간판보다도 분열보다도 이 죄악의 세계를 믿음으로 이겨낼 그리스도의 말씀이 급하고 필요합니다. 우리의 집회는 그 누구를 위한 집회가 아닙니다. 우리의 운동은 그 어느 특정인의 정치에 활용될 정도의 무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끓는 피와 함께 신앙의 생명으로 토하여 지는 우리 운동의 신조와 목적과 사명과 원리가 위와 같은 탁한 공기 속에서 숨막히는 고통을 울리고 질식을 할 정도입니다.

사랑하는 신앙운동원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낙심도, 자포도, 공포도, 머뭇거림도 벌써 지나갔습니다. 새 시대를 향하여 전진하는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이것들을 붙들고 있으라고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는 미디안 진중의 300 용사의 소리를 발하기 위하여 새 운동의 역사를 치루기 위하여 거치른 역사 앞에서 다만 고요한 자세를 취할 뿐입니다.

1963년 7월

전국 학생신앙운동 위원일동